18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칼바람 불어도 그 산에 오르는 이유’ 편이 전파를 탄다.
겨울 산 깊숙이 홀로 피어있는 꽃. 종교를 넘어 오래 된 향기와 자연을 느끼게 하는 곳, 칼바람 품고 있는 겨울 산 ‘암자’. 2018년 한 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무엇이 진정한 삶인지 겨울 산골 암자의 소박한 밥상을 통해서 그 깨달음을 얻는다.
▲ ‘공양도 수행이다 ’ - 벽송사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선방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스님들의 수행 선방으로 유명한 함양의 벽송사. 벽송사의 주지 스님인 원돈스님은 장작을 패는 일도, 농사를 짓는 일도, 모든 일상이 불가의 스님들에겐 수행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기에 불가의 음식 또한 수행을 하듯 건강하고 정성스럽다. 음력 10월 보름부터 90일은 사찰에 머물며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한다는 동안거 기간이기에 음식을 담당하는 공양주 보살님은 더욱 먹을거리에 신경을 쓴다. 쌀뜨물을 넣어 걸쭉하게 만드는 두부 들깨 토란탕부터 직접 농사지어 거둔 비타민 D의 보고 시래기나물, 스님들이 삭발을 하는 날이면 만들어 먹었던 오곡찰밥 까지. 고기도 육수도 향신채도 들어가지 않은 소박하고 자연스런 음식들이 차려진다. 먹어서 영양을 취하되 먹어서 덜어내는 일이기도 하다는 벽송사의 소중하고 따뜻한 밥상이다.
▲ 우리의 몸을 지탱시켜주는, 산천을 품은 보약 - 정취암
신라 시대 때 창건 돼 1300년 이상 기암절벽을 지키고 있는 유서 깊은 산청의 정취암. 동지를 하루 앞 둔 날, 팥죽에 들어갈 찹쌀 경단을 만드는 불자들의 손이 바쁘다. 행자 시절 공양수행을 해온 주지스님인 수완 스님도 손을 보탠다. 팥죽을 만들기 위해 제일 중요한 일은 바로 팥을 삶는 일. 큰 가마솥에 전날 미리 만들어 놓은 팥물을 붓고 계속 끓인다. 눌러 붙지 않게 저어줘야 하기 때문에 새벽 내내 불 옆을 떠날 수 없는 수고로움이 동반 된다. 새알은 미리 넣으면 퍼지기 때문에 팥물이 끓으면 바로 넣는다. 한 그릇이 완성 되려면 최소 15시간 이상 걸리는 까다로운 정취암의 팥죽. 이 암자의 주지인 수완 스님은 30년째 팥죽 공양을 하고 있다고... 그렇기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팥죽은 부처님 전에 올라간다. 올 한해도 무사와 행복을 지켜달라는 의미다. 매섭도록 추운 산사의 겨울은, 입이 아닌 마음으로 먹는 팥죽 한 그릇으로 따뜻하게 녹는다.
▲ ‘세수를 하면 얼굴이 깨끗해지는 것처럼,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깨끗해진다’ - 극락암
겨울비 내리는 남원의 극락암. 이 암자에는 14년 째 함께 수행 중인 성환 스님과 보월 스님이 있다. 두부를 쑤며 아웅다웅 하는 두 스님의 말소리가 마당 밖까지 와 닿는다. 고기를 먹지 않는 스님들에게 두부는 단백질 공급원이다. 콩물을 어머니의 마음처럼 넓디넓은 가마솥에 보글보글 끓이고, 깨끗한 천에 옮겨 담는다. 꾸밈이 없이 담백한 콩물을 한잔 마시고 나면, 간수를 넣어 몽글몽글 해진 순두부를 틀에 담아 물기를 뺀다. 작은 음식 하나에도 수행의 길이 담겨있기에 스님들은 두부 한 모에도 정성을 다한다. 된장에 버무린 시래기 위에 방금 나온 두부와 버섯을 올린 시래기 두부 지짐, 들기름에 노릇하게 지져 낸 두부에 볶아 놓은 우엉채와 버섯을 올린 우엉두부 부침, 해초향 가득한 청각장, 마지막으로 보리와 콩이 함께 띄워진 보리 청국장까지 밥상에 오른다. 산사의 혹독한 추위를 끄떡없이 이겨내게 만드는 건강한 밥상이다.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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