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자금난을 겪다가 법원에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중소기업 대표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망고식스·할리스 등 카페 브랜드를 이끌며 ‘커피왕’으로 불리던 고(故) 강훈 KH컴퍼니 대표와 ‘김수로 프로젝트’ 공연을 기획한 고 최진 아시아브릿지컨텐츠 대표가 그들이다. 이처럼 한계에 몰린 중소기업들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거듭되는 비극을 막자는 목소리가 최근 국내외 도산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회생법원은 개원 후 첫 국제회의를 열어 중소기업의 효율적 회생 및 파산을 위한 방안을 세계 각국 법률가들과 논의한다.
정준영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는 “올 상반기 대략적인 정비를 마친 회생법원은 하반기 중소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번 회의 성과를 토대로 국제적 화두인 중소기업을 위한 통합 회생 절차를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회생법원이 오는 14일부터 이틀간 주관하는 개원 기념 국제회의에는 이경춘 법원장과 정 수석부장판사 등 회생법원 소속 법관과 대형 로펌 변호사, 기업인들이 참가한다. 이밖에 로버트 드레인 미국 뉴욕남부 연방파산법원 파산판사와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의 제니 클리프 수석법률담당관을 비롯해 중국·일본·영국·호주 등지의 파산 전문 법관들이 대거 참가해 각국 사례를 공유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다.
국제 도산부터 대기업·비영리기관에 이르는 이번 회의 주제에서 중점 논의 대상은 중소기업이다. 정 수석부장판사는 “그간 각국의 도산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하지 않았지만 10여년 전부터 중소기업(SMEs·Small/Medium sized enterprises) 또는 더 작은 ‘마이크로 SMEs’들을 위한 맞춤형 회생·파산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국내에서는 지난 2014년 총 채무액 3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빠르게 법원 관리를 받아 재기할 수 있도록 간이회생 절차를 도입해 전 세계 법원의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또 중소기업 대표자 개인 회생사건을 기업 회생사건과 동시에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부실은 대개 경영인 개인의 파산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밖에 법원은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연계해 중소기업의 회생 절차 비용을 지원하는 회생 컨설팅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회생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과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적기에 법원 관리를 받을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법원이 도입한 간이회생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져 이용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 수석부장판사는 “회생절차는 재기할 수 있는 자금과 인력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진행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자금줄이 끊기고 인력은 다 빠져나간 상태에서 법원을 찾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회생법원은 이번 국제회의에서 나온 다양한 논의를 종합해 중소기업 회생절차를 개선하는 데 반영하기로 했다. 특히 회의 성과에 따라 중소기업을 위한 통합 회생 프로그램도 구상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법원은 간이회생 제도의 효율화와 더불어 ‘퍼스트데이오더(First Day Order)’라 불리는 사업 지속을 위한 포괄 허가제도의 확대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제도는 회생 절차 신청과 함께 회사 인력, 회사가 진행 중인 주요 사업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대기업이 주로 활용했지만 중견·중소기업도 법원의 관리를 받으며 핵심 사업을 차질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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