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장난은 남몰래 조그맣게 벌일 때는 짜릿한 흥분을 주지만 세상을 태우기 시작하면 화마(火魔)로 변해 대지를 불태우고 종내 불장난을 일으킨 주체도 삼켜버릴 수 있다. 비유하건대 김정은의 핵 불장난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됐다. 지난 7월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에 성공하고 나서 김정은은 “미국도 무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했을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다.
북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패로 끝난 6·25 전쟁, 중소 양국과의 동맹 관계의 불안정성, 중소 분쟁,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력과 강력한 한미 동맹, 한국의 경제 성장 등 김일성은 재래식 군사력만으로는 안보를 지탱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북은 안보적 지렛대로 핵무기 개발에 집착했다. 그러나 남몰래 벌이는 불장난이었다.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경제난의 이중고에서 핵무기는 체제 보존을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대두됐다. 핵 개발이 발각되자 김정일은 이를 미국과의 외교적 관계와 협상을 위한 카드로 구사했다. 미북 양자회담, 4자회담, 6자회담 등 형태는 다양해도 결국 미국과의 딜(협상)로 북의 안보적 이익을 충족시키려 한 시도였다. 김정일은 미사일을 쏘든 핵실험을 감행하든 협상 상황과 연동시키는 신중함을 보였다. 여전히 불장난 수준이었다.
2009년 후계자에 오른 김정은은 젊은 혈기 때문인지 철이 없어서인지 미사일이건 핵이건 일직선으로 진전시켰다. 더 이상 핵 개발은 안보적 지렛대도 협상 카드도 아니다. 노골적으로 미국을 겨냥하는 단순한 불장난의 수준을 넘어섰다. 게임 체인저라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한국의 안보지형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상황이 됐다. 미국이 중국의 금융기관과 기업을 대상으로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해도, 대북 선제타격을 저울질한다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협상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압박의 목소리만 높아졌다.
그러나 김정은의 시도는 세상을 태우는 데까지는 미치지 않을 것이다. 북이 핵무기로 할 수 있는 일은 김정은의 위대성을 찬양하고 대외적으로 큰소리치는 것 말고는 없다. 일각에서 나오는 북이 핵무기 발사로 협박하면서 한반도에서 국지도발을 감행한다는 시나리오는 한미 동맹 체제를 경시하는 소설이다. 그런 협박 때문에 미국이 자신의 동맹이 공격당하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정말로 북이 비정상적인 판단으로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그다음에 벌어질 일은 상상대로다. 북은 미국의 정교하고 엄청난 핵무력에 의해 보복당할 것이다. 그런 시나리오로는 북한 지역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이런 시나리오보다 미국이 중·러의 대북제재를 강도 높게 압박함으로써 강대국의 관계가 악화해 외교적 갈등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이다. 이미 이런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물론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적절한 수준에서 갈등을 관리할 것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지금을 기회로 중국을 압박해 무역 역조 등 다른 부문에서 이익을 취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당장 북의 핵무기 폐기를 위한 묘책은 없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는 불가피하게 취하는 방법론이다. 선제타격 등 극단적인 조치는 동북아 역내 질서를 뒤흔드는 최후의 수단이다. 남북 관계 개선도 지금으로는 어렵다. 그럼에도 김정은의 의도와 상관없이 북의 불장난이 한반도와 국제사회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외교적 역량이 세심하게 발휘돼야 한다. 핵심은 국제사회에서 북핵을 불용하고 북이 도발하면 할수록 압박의 강도가 높아질 것이지만 협상 테이블에 나선다면 이를 환영한다는 공동전선이 결성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미중의 이해관계가 같을 수는 없지만 이를 조정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설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이 그래서 필요하다. 북의 불장난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만큼 침착하게 대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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