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하며 전 세계를 또다시 소용돌이로 몰고 간 1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불과 수 마일 떨어진 버지니아주 챈틀리의 한 고급호텔에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직’으로 불리는 전 세계 소수 엘리트의 비밀 회합 ‘빌더버그 회의’가 열렸다.
‘유럽과 북미 간 대화를 촉진한다’는 목적 아래 1954년부터 대서양 양안의 현안을 다뤄온 빌더버그 회의는 네덜란드 왕실과 록펠러 가문의 주도로 시작됐다. 해마다 거물급 인사들의 참여와 내용이 외부에 단 한 줄도 공개되지 않는 역사로 높은 관심을 끌어온 이 회의는 최근까지 참석자 명단조차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탓에 일각에서는 비밀결사 단체 프리메이슨의 회합 또는 세계유일 정부를 세우려는 모임이라는 음모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주최 측은 65회차 모임에 참석할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 등 21개국 131명의 참석자 명단과 13개 주제를 간략히 공지했을 뿐 함구령을 유지했다. 다만 개최 이틀 전부터 호텔 주변에 나무들을 촘촘히 심고 경호원을 배치할 정도로 보안에 공을 들인 것과 달리, 이번 회의는 높은 확률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논의로 가득 찰 것으로 보인다.
빌더버그 회의가 공개한 회의 주제 첫 번째가 다름 아닌 ‘트럼프 행정부의 경과보고서’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대서양 양안 관계-선택과 시나리오’ ‘대서양 양안 안보동맹’ ‘유럽연합(EU)의 방향’ 등이 포함됐다. 이들 모두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혈맹이던 미국과 서유럽 주요국의 관계가 틀어지고 백악관을 중심으로 나토의 존재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는 등 대서양 양안에 몰아닥친 정치적 변동을 충실히 반영한 주제들이다. 나머지도 ‘포퓰리즘 전망’ ‘세계질서 내에서의 러시아’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밀접한 연관성을 띄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세계 정치·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엘리트들이 모여 나흘간 트럼프 대통령와 그의 정책을 논의하게 된 상황을 두고 “백악관 코앞에서 태풍이 부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예측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한편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기후협정 탈퇴 선언 이후 전 세계에서 그를 비난하는 연쇄 시위가 빚어지면서 매년 이번 회동을 비난해 온 시민단체들과 빌더버그 회의의 방향성이 묘하게 일치하는 이례적인 상황도 연출됐다. BBC 등 다른 외신들도 엘리트 그룹이 참여하는 빌더버그 회의가 “트럼프 시대를 논하는 비밀스럽지만 공식적인 자리가 될 것”이라며 회의의 파장이 국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관심을 드러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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