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대선이 끝나고 마침내 대한민국이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대선의 승자는 국민이었다. 선거에 임하는 국민들의 자세가 과거와 크게 달랐다. 국민과 정당, 후보 간 소통이 역대 최고였다. 국민들은 선거 기간 내내 각 후보의 유세 동반자이자 감시자 역할을 했다. 국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후보들의 유세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피드백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열심히 외부로 표출했다. 어설픈 네거티브 전략이 전 국민의 검증 과정을 거쳐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일도 허다했다.
국민들의 정치 참여가 이토록 높았던 것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충격적 사건 직후 치러진 선거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개개인이 지닌 ‘디지털’이라는 도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 뜻과 열망을 가장 많이 품어낼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내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으로 세웠다. 디지털의 힘이 어느새 이토록 강력해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선거로 ‘4차 산업혁명’ 같은 모호한 단어로 대변되는 미래의 한 단면을 본 것일 수도 있다. 정치의 영역이든 경제나 개인 일상의 영역이든 간에 더 이상 아날로그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정보 전달의 시간 차를 이용해 우위를 점하는 구태가 설 자리를 잃은 미래 말이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 존재하고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디지털 역시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디지털이 과거의 아날로그적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수평적 소통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디지털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격차와 기회의 불평등이 자라나고 있다.
‘디지털 디바이드’로 불리는 이 같은 디지털 격차는 이미 일상 곳곳에서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 평생 시외버스 터미널이나 열차 역에서 직접 표를 구매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노인은 모바일 실시간 예매 앱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에게 밀려 연휴나 명절에 표를 구하지 못하기 일쑤다. 어떤 이는 집에 앉아서도 은행 금리를 0.1%포인트 더 받을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시골의 노인은 간단한 송금조차도 완행 버스를 한 시간씩 타고 은행이 있는 곳까지 나와 수수료를 내고 처리한다. 이런 일들을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앞으로 디지털이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디지털 디바이드는 조만간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디지털 격차는 세대 갈등, 빈부 갈등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스러운 전망이 많다.
새 정부는 곧바로 그간 쏟아낸 공약들을 정책화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많은 공약이 미래와 연결돼 있고 대부분 디지털을 핵심으로든 보조적 수단으로든 포함하고 있다. 분명 디지털은 정책적인 면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부스터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신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새로운 소외자와 불평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인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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