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를 피라미드와 미라의 나라로, 아라비아를 천일야화와 석유의 나라로만 생각한다면 ‘재미없다’. 일찍 찾아온 더위와 정치 열기로 뜨거운 서울이 이집트와 아라비아의 색다른 향기로 달아오른다. 세계 4대 고대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이집트와 세계 3대 종교인 이슬람교가 생겨난 아라비아는 역사적 위상에 비해 우리에게는 늘 ‘제 3세계’이며 ‘이국적인 먼 나라’였다. 이들에 대한 문화적 편견을 깨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연달아 막을 올린다. 국보급 작품과 문화재 수백 점을 볼 수 있어 마치 해외여행을 다니는 듯한 안복(眼福)의 기회지만 왜 굳이 지금 한국에서 이 전시냐는 질문에는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타자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어떤 모습인지를 새삼 다시 볼 수 있다.
◇초현실주의로 만나는 이집트=영화 속에서는 외계인이거나 변종괴물이지만, 이집트에서 청록색 피부의 인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 자체로 초현실주의”를 뜻한다. 초록은 곧 귀한 신성(神性)의 색인지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7월30일까지 열리는 ‘예술이 자유가 될 때: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전에서는 유난히 녹색조가 눈에 띈다. 고대 문물로만 소개돼 온 이집트의 현대미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귀한 전시다. 지난해 이집트 카이로의 예술궁전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가 한국으로 오며 확장돼 31명 작가의 작품 166점을 선보인다. 대부분 ‘국보급’ 미술품인데다 해외 반출이 처음이라 전시 개막이 보름 이상 지연됐다. 1차 세계대전 후 파시즘에 반발하며 이성과 합리성을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의 추구로 뿌리내린 유럽의 초현실주의와 달리 프랑스 유학파를 중심으로 이집트에 퍼진 초현실주의는 차별과 억압에 대한 비판 등 근대기 이집트 내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예술에 반영했다. 살바도르 달리를 떠올리게 하는 ‘초현실주의적(的)’인 작품도 있지만 ‘청록 인물’처럼 이집트 만의 색깔이 곳곳에서 반짝인다. 고대 피라미드 벽화처럼 사람 얼굴을 측면상으로 그리는 것이나 영적인 동물로 여긴 고양이와 새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렇다. 체제 비판적 그림 때문에 구금됐던 작가가 있는가 하면 권력예찬의 냄새가 짙은 그림도 있다. 우리의 1960~70년대 근대화·산업화 시기의 예술도 떠올리게 한다. 이집트 문화부·카이로 아메리칸대학과 함께 이번 전시를 기획한 샤르자예술재단의 후르 알 카시미 공주는 세계미술시장의 중요한 ‘큰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유물로 본 아라비아=이슬람교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 신전에 있었던 문이 처음으로 국내에서 전시된다. 기원전 4,000전 무렵에 만들어진 사람모양의 아라비아 석상, 우리의 빗살무늬토기 만큼이나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기원전 3,000년기의 ‘뱀무늬가 있는 녹니석 그릇’도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다. 따지자면 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를 집중 조명한 전시 자체가 그간 없었던 탓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아라비아 반도에서 펼쳐진 역사적 사건과 이곳에서 꽃핀 문화를 조명하는 특별전 ‘아라비아의 길-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를 10일 기획전시3실에서 개막해 8월 27일까지 연다. 아라비아는 문명의 교차로이자 이슬람교의 발상지이며 고대에 유향과 몰약이 유통된 경로였고 7세기부터는 이슬람의 중심지였다. 이번 전시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13개 주요 박물관이 소장한 466건의 중요 문화재들이 엄선됐다. 고대 문물들은 지금은 사막인 이 지역이 과거 비옥한 습지였음을 일깨우고, 다양한 도상이 가득한 석비와 거대 석상은 국제 도시의 화려한 과거를 짐작하게 한다.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로 향하는 순례길에서 출토된 유물은 순례자의 삶을 떠올리게 하며 경건함과 신비함을 내뿜는다. 전시의 마지막에서는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 국왕으로 등극한 압둘아지즈 왕의 유품과 19세기의 공예·민속품을 소개한다. 아라비아의 진면목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 개막에 맞춰 사우디아라비아의 현 국왕의 장남인 술탄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관광국가유산위원회 위원장이 내한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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