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역 근처의 한 카페. 실내로 들어서자 메케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좌석에는 담뱃갑과 커피잔, 재떨이 대용인 하얀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입에 담배를 문 채 잡담을 하는 손님들의 모습은 자연스러웠다. 이 카페는 국민건강증진법상 ‘금연건물’로 지정돼 단속에 적발되면 업주가 과태료 170만원을 내야 한다. 카페 주인은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단골이 담배를 피우는데 무작정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1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서울 중구·마포·영등포·관악구 등의 식당·PC방·카페 등을 직접 방문해 취재한 결과 여러 금연 사업장에서의 흡연이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PC방도 과거에 비해 흡연부스를 만드는 등 많이 개선됐지만 밤이 되면 예전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양천구의 한 PC방은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오후10시가 지나자 곳곳에서 모락모락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PC방 직원이 손님들에게 금연구역임을 알리고 담배를 꺼달라고 요구했지만 “이 시간에 단속하는 공무원이 있겠느냐”며 되레 직원에게 면박을 줬다. 이날 밤 급하게 과제물을 인쇄하러 PC방에 들렀다는 이미나(22)씨는 “프린트하는 데 고작 10분 정도 걸렸는데 옷에 담배 냄새가 뱄다. 다시는 PC방에 오지 않겠다”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금연구역에서의 흡연이 여전한 것은 단속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은 지난 2013년 금연구역 흡연이 경범죄처벌법에서 삭제돼 단속권한이 없다. 이에 따라 단속주체인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각 구청이 단속에 나섰지만 인력부족으로 실효성 있는 단속은 어려운 형편이다. 실제 마포구의 경우 금연구역이 1만3,000여곳에 달하지만 단속인력은 4명뿐이고 중구청은 금연구역이 1만166곳이지만 단속반은 겨우 9명이다.
금연구역을 무작정 늘리면서 흡연구역은 그에 맞춰 확대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2년 3,134곳이었던 실외 금연구역은 2016년 1만6,984곳으로 무려 5배 넘게 늘어났다. 반면 서울시의 실외 흡연시설은 11개 자치구 43곳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흡연자들이 금연구역을 피해 주택가로 몰려들면서 간접흡연 민원이 늘어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 219건이었던 공동주택 간접흡연 민원 건수가 2015년에는 348건으로 58%나 증가했다.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찾은 지하철 2호선 왕십리역 6번 출구와 맞닿은 한 주택가 골목 역시 담배꽁초·침·커피잔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던 이창수(33)씨는 “담배를 피울 곳이 없으니 길거리나 주택가에서 어쩔 수 없이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10조원이 넘는 담배 세수만 챙기고 흡연자를 위한 대책은 전혀 없이 무조건 끊으라고만 하니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금연구역이 늘어난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흡연자를 위한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간접흡연을 고려해 금연구역을 늘리는 만큼 흡연구역을 만들지 않으면 결국 ‘풍선효과’만 나타날 뿐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 등 선진국은 길거리 간접흡연 피해를 막기 위해 흡연부스 설치를 적극 권장하고 일부 보조금도 지급한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11년부터 영세한 음식점이나 숙박시설에 별도 흡연실을 만들 경우 흡연실 설치비용의 4분의1을 지원한다. 윤상원 서초구 건강정책과 금연관리팀장은 “금연법 제정 이후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면서 흡연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연면적 1,000㎡ 이상 건물에는 흡연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법 개정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외 금연구역의 폐쇄형 흡연부스는 설치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저렴한 개방형 부스를 설치하되 간접흡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입지선정에 대한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 조성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폐쇄형 흡연부스는 환기시설을 갖춰도 담배냄새가 잘 빠져나가지 않아 흡연자들도 들어가기를 꺼린다”며 “개방형 흡연부스를 늘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찾도록 유도하고 비흡연자들이 담배 연기에 노출되지 않는 장소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우인·김우보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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