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고 ‘향수’를 노래했던 정지용 시인은 막상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라며 변해버린 ‘고향’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1927년의 이야기다. 명절을 갓 지내고 떠나온 현대의 고향도 어릴 적 기억과 일치하지 않기에 애잔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이제 디지털 세대는 게임의 추억으로 향수를 더듬을지 모를 일이다. 화가 김영헌은 이처럼 새로운 미디어가 지배하는 시대에 대한 비판으로 ‘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향수)’를 이야기한다. 색이 이지러지며 이루는 결은 가죽 붓에 여러 색을 묻힌 다음 빠르게 칠하는 전통 ‘혁필’ 기법의 결과다. 마치 물감이 흘러내린 듯 우연한 효과로 보이지만 작가는 의도와 계획에 따라 ‘전송 에러’가 발생시키는 화려한 색을 구성했다. 화폭에는 분명 대상이 있었고 사연도 담겼을 테지만 ‘디지털 노이즈’ 같은 색의 현란함 속에 아날로그는 파묻히고 구상적 이미지는 왜곡돼 찾아보기 어렵다. 작가의 개인전 ‘가상 풍경’이 서울 강남구 초이앤라거갤러리에서 2월24일까지 열린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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