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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회 대종상 영화제] 5관왕 '내부자들' 덕분에 그나마 체면치레, 대종상 이제 그만 축제를 끝내자 (종합)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시상식인 대종상영화제가 2년 연속 배우들과 영화인들이 대거 불참한 가운데 반쪽짜리 시상식의 처참한 모습을 보이며 무너져내렸다.

제53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이 27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대학교 컨벤션홀에서 김병찬, 공서영, 이태임의 사회로 개최됐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내부자들’이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이병헌), 감독상, 각본상, 기획상 등 다섯 개의 상을 수상하며 5관왕에 올랐고, ‘덕혜옹주’가 여우주연상(손예진)과 여우조연상(라미란), 의상상, 음악상 등 4관왕에, ‘곡성’이 신인여우상(김환희)과 촬영상, 편집상, 조명상 등 4관왕에 올랐다.

■ 2015년 이어 2년 연속 불참사태, ‘내부자들’ 없었으면 어쩔 뻔 했니?

‘제53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내부자들’ 이병헌과 감독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 / 사진 = 제53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 유튜브 중계화면 캡처






대종상영화제의 파행은 지난 2015년 열린 52회 영화제 당시 조근우 집행위원장이 “국민이 함께 하는 영화제이기에 대리수상은 옳지 않다”며 대리수상을 불허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로 인해 당시 남녀주연상, 남녀조연상 등 주요 부문에 후보로 오른 배우들이 조근우 집행위원장의 발언에 반발해 대거 시상식 불참을 선택하며 영화제가 대리수상이 남발되는 반쪽 영화제로 전락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태는 비극적이게도 2016년 53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지난해 조근우 집행위원장의 설화(舌禍)와 같은 사태는 없었지만, 집행위 구성 문제 등으로 시상식 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 원인이 됐다.

보통 10월 중순에서 11월 중순 사이에 개최되던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은 2016년 시상식 개최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까지 몰렸다가 간신히 12월 27일 개최를 확정했다. 하지만 후보자 공개가 시상식을 불과 10여일 앞두고 나오면서 스케줄 문제로 배우와 영화인들의 대거 불참 사태가 빚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그동안 대종상을 방송해오던 KBS 역시 대종상영화제 시상식 방송을 포기하면서 케이블 채널인 K-Star 채널에서 겨우 생중계의 생색만 낼 수 있었다.

결국 지난해에 이어 넘쳐나는 불참과 대리수상 속에 그나마 대종상을 구원한 것은 ‘내부자들’이었다. ‘내부자들’은 우민호 감독과 남우주연상 후보인 이병헌, 여우조연상 후보인 이엘 등 주요 후보들이 모두 참석하면서 대종상을 넘쳐나는 대리수상의 악몽에서 구원해냈다.

주요 영화 중 유일하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내부자들’은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이병헌), 기획상 등 최고 알짜배기 상으로만 다섯 개를 골라가며 5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시상식에 참석한 ‘내부자들’ 팀 중 유일하게 빈 손으로 돌아간 것은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이엘 뿐이었지만, 사실 ‘내부자들’에서 이엘의 적은 출연분량을 감안하면 이엘의 수상이 불발된 것이 차라리 논란의 여지를 만들지 않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 ‘곡성’ 김환희의 최연소 4관왕, ‘덕혜옹주’ 프로듀서의 뜻밖의 4관왕?

‘제53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 수상 후 대리수상을 위해 세 차례나 더 무대에 올라온 ‘곡성’의 김환희와 네 차례나 대리수상을 한 ‘덕혜옹주’ 프로듀서 / 사진 = 제53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 유튜브 중계화면 캡처




수상자 대부분이 불참을 하다보니 웃지 못할 사태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곡성’에서 “뭣이 중헌디?”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신인여우상을 거머쥔 김환희 배우가 무려 네 번이나 무대에 올라 대리수상을 해야했고, ‘덕혜옹주’의 프로듀서 역시 ‘덕혜옹주’의 상복이 터지며 네 번이나 무대에 올라 김환희 배우와 함께 나란히 4관왕의 영광(?)을 기록했다.

물론 김환희가 ‘곡성’으로 신인여우상을 수상할 때만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2부에서 ‘곡성’이 조명상을 수상한 순간부터 김환희의 고난기는 시작됐다. 1부에서 수상한 다른 영화의 경우 프로듀서가 나와 대리수상을 했지만 ‘곡성’에서는 프로듀서 등 스태프들이 아예 오지 않아 조명상을 수상할 대리수상자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사회를 맡은 김병찬 아나운서는 “‘곡성’에서는 어느 분이 대리수상을 하시냐?”고 거듭 물어봤고, ‘곡성’ 팀 전체를 통틀어 2002년생으로 최연소인 김환희 배우가 결국 무대에 올라 조명상을 대리수상했다.

문제는 이어서 ‘곡성’이 편집상을 수상하며 김환희 배우가 다시 무대에 올라와 세 번째 수상이자 두 번째 대리수상을 하게 됐고, 이어서 쉬지 않고 ‘곡성’이 촬영상까지 수상하자 아직 편집상 대리수상 후 자리로 돌아가지도 못한 김환희 배우가 또 다시 무대에 오르는 희대의 촌극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김환희 배우는 한국영화 역사사상 최연소 4관왕이라는 진기록(?)을 남기게 됐다.



김환희보다는 덜 민망했지만 그래도 ‘덕혜옹주’의 프로듀서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덕혜옹주’가 1부에서 의상상과 음악상을 수상하며 두 차례의 대리수상을 했는데, 2부에서는 여우조연상(라미란)과 여우주연상(손예진)을 연거푸 수상하며 또 다시 대리수상을 하게 된 것이다. 시상식의 꽃이라는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은 결국 ‘덕혜옹주’의 남자 프로듀서였다. 게다가 김병찬 아나운서는 이 사태에 대해 “과연 두 분이 오늘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몇 개의 트로피를 더 받아갈지 궁금하다”며 즐기는 모습까지 보였다.

■ 초라한 행사장과 시간을 끌기 위한 시상자들의 두서 없는 말들, 초등학교 학예회 하나요?

‘제53회 대종상영화제’ 제53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이 열린 세종대학교 컨벤션홀의 내부전경 / 사진 = 제53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 유튜브 중계화면 캡처




제53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은 12월 27일이라는 일정을 급히 잡다보니 대극장 등을 섭외하는데 실패하고 세종대학교 컨벤션홀에서 시상식을 개최했다. 문제는 이 컨벤션홀이라는 곳 자체가 시상식을 진행하기에는 말도 안 되게 작은 규모라는 것이다.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장의 전경은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 시상식이라는 대종상의 역사에 전혀 걸맞지 않았다. 비좁은 홀에는 원로 영화인들이 대다수인 원탁이 가득 차 있었고, 무대는 축하공연을 시도한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로 비좁았다.

이 상황에서도 대종상영화제 측은 카메라로 객석과 무대 전경을 훑는 과감한 시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볼 수록 세종대학교 컨벤션홀에서 진행중인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의 풍경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시상식이 아닌 한 기업의 연말 송년회 자리나 어르신들이 가득한 호텔 디너쇼 공연장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리수상이 남발되다보니 세 시간에 가까운 시상식 시간을 채우기가 어려워져서 시상자들에게 무리하게 토크를 시킨 것도 빈축을 사기에 충분했다. 제대로 된 멘트를 준비하지 못한 시상자들은 시간을 끌기 위해 어색한 가운데 서로의 근황을 묻거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길게 ‘시상소감’을 이끌었다. 정작 수상자의 수상소감은 대부분 “이 상은 잘 전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며 20초도 안 되는 시간에 끝난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다.

심지어 시상자들의 ‘시상소감’으로도 시간을 끌기가 힘들어지자 이번에는 사회를 보던 김병찬 아나운서와 공서영 아나운서, 이태임 배우가 이런 저런 이야기로 만담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지연시키는 모습까지 등장했다. 대규모 불참 사태가 예상된 시점에서 효과적으로 시간을 채울 방법 같은 것은 전혀 고민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대종상영화제에서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올라온 한 원로영화인은 “대종상이 그동안 많이 아팠습니다. 그 상처를 건드려 더 악화시키지말고, 조금씩 돌봐서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쇼”라며 대종상영화제에 대한 성원을 부탁했다.

하지만 대종상영화제가 2년 연속 겪은 처참한 몰락은 애석하게도 영화인들과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대종상영화제를 이끌어온 원로 영화인들이 자청한 결과다. 조직위원장을 역임한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이 방산비리 혐의로 구속되고, 집행위원장은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영화인들과 배우들의 반발을 샀다. 또한 원로영화인들은 대종상영화제의 패권을 두고 수시로 다투며 스스로 ‘대한민국 대표 영화 시상식’의 품격을 떨어트렸다.

2015년 제52회 시상식에서 대한민국 영화제 역사에 길이 남을 보이콧 파문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종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애니깽’ 파문부터 시작해 왜 항상 영화 시상식이 논란의 중심에 설 때마다 그 주인공이 대종상이었는지, 대종상영화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원로영화인들 스스로가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제53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은 우리 나라 영화의 예술적 향상과 영화산업 및 영화계의 발전을 위하여 제정된 시상식으로 27일 오후 6시부터 K-Star 채널과 유튜브(YouTube), 페이스북 등을 통해 생중계로 진행됐다.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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