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콘텐츠산업 지원정책 개편 방안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기조였던 ‘문화융성’의 좌절이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문화창조융합벨트를 내세웠다. 융합벨트는 융복합 콘텐츠의 기획, 제작·사업화, 소비·구현, 인력양성·기술개발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생태계였다. 하지만 이번 개편으로 제작·사업화와 인력양성을 하는 두 거점인 문화창조벤처단지·문화창조아카데미만 남고 이들 기능도 축소된다. 문화콘텐츠 산업 구조가 박근혜 정부 이전으로 후퇴한 것이다. 최근 문화콘텐츠산업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중국의 한류 비즈니스에 대한 제한까지 커지고 있는 지금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굴과 육성에 나서도 모자란 판국에 올바른 정책 전환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어디서 잘못 되었나=문화창조융합벨트가 지난 2015년 2월 처음 시작됐을 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다. 문화콘텐츠 산업의 도약을 위해 이 산업이 자생하고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국내 콘텐츠산업은 10-10-10 구조다. 10만개 콘텐츠기업이 있는데 대부분이 자본금 10억원이 넘지 못하고 직원도 10명 미만이다. 영세하니까 임금이 적고 기술수준도 낮다. 콘텐츠산업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자는 구상이 나온 이유다.
명분과 현실에서 차이가 있었다. 예산이 부족한 정부는 이런 생태계 구상을 기업들에게 떠맡겼다. 융합벨트의 5개 거점은 문화창조융합센터(CJ), 문화창조벤처단지, 문화창조아카데미, K컬처밸리(CJ), K익스피리언스(대한항공)다. 이 가운데 정부 직영은 벤처단지와 아카데미 2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3개는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서 추진됐다.
여기에다 정부 직영거점도 최순실의 측근이 차은택이 깊이 관여하면서 사업추진과정에서 사적 이익을 챙겼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융합벨트가 선의로 시작했다고 해도 절차상의 문제 제기에 결국 허물어진 것이다.
◇남은 조직은 어떻게 되나=이번 개편방안을 통해 콘텐츠 지원기관은 콘텐츠팩토리와 콘텐츠인재캠퍼스 2곳만 남는다. 전자는 콘텐츠 기획과 기업지원을, 후자는 인력개발이다. 여기에 성격이 겹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콘텐츠코리아랩을 새로 콘텐츠팩토리에 합쳤다.
이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올해 904억원이던 관련 예산은 내년도 499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이를 통해서는 현재 운영중인 서울 중구의 문화창조벤처단지(옛 한국관광공사 건물)와 홍릉에 새로 짓고 있는 콘텐츠인재캠퍼스(문화창조아카데미)도 운영하기 어려운 상태다.
민간에서 자율로 운영된다는 3개 거점의 미래는 더 불투명하다. 계획대로 건설된다고 해도 각 기업들의 단순 사업체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문화콘텐츠 산업 위한 ‘플랜B’가 나와야=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표 먹거리로서 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최근 경기둔화와 중국 등 대외정세의 어려움은 콘텐츠산업에 대한 더 많은 지원을 필요로 한다.
문화창조융합벨트라는 ‘문화콘텐츠 생태계’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랜B’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문체부 등 관련 부처는 엎질러진 물을 치우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리더십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화계의 한 인사는 “이른바 문화창조융합벨트의 실패가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의 실패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며 “미래 전략산업으로의 재인식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수문기자·박성규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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