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구텐버그>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배우 정동화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2인극은 다 경험해 본 그에게도 이 작품은 가히 ‘끝판왕’이라 부를 만큼 어려운 작품이었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브로드웨이 진출을 꿈꾸는 작가 ‘더그’와 작곡가 ‘버드’가 자신들이 직접 쓴 뮤지컬을 제작자들 앞에서 선보이는 리딩 공연의 형식을 취하는 작품으로, 두 배우는 최소한의 세트와 소품으로 직접 극중극 캐릭터를 연기한다. 정동화는 그 가운데 작가 ‘더그’ 역을 맡았다.
“인터미션이 있는 2인극은 처음이에요. 그만큼 무대에서 배우가 소화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서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아요. 또 관객과 만나면서 생기는 돌발 상황 때문에 긴장감도 많이 생기죠”
<구텐버그>라는 한 작품을 통해 뮤지컬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는 정동화 배우의 말처럼 이 작품은 노래와 연기는 물론 소품, 무대 효과 등 어느 하나 배우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여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관객들의 호흡 역시 배우가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가 된다. 매 회 상황이나 호흡의 편차가 다른 극보다는 훨씬 커서 무대 위 배우의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극이다.
정동화 역시 “물론 똑같이 해도 그날의 공기와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보시는 분들은 다르다고 느끼시겠지만, 이 작품은 상황에 넣었던 애드리브나 소스들을 계속 다르게 해줘야 하는 극 같아요”라고 전하며 “그래야 이 극을 여러 번 보시는 분들에게도 계속 재미를 드릴 수 있을 것 같고요”라고 공연 마다 애드리브를 달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단 두 명의 배우가 수십 개의 모자를 바꿔가며 극 속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은 뮤지컬 마니아층에게도 굉장히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극 시작 5분 전부터 등장해서 무대를 정리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어디서부터가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구분하기 모호할 정도로 신선했다.
“관객들이 작품에 집중해야 하는 시점과 편하게 볼 수 있는 시점이 조금은 다른 것 같아요”라고 언급한 정동화는 “이 작품의 극중극이라는 형식 때문에 뮤지컬 리딩 형식을 낯설어하시는 분들은 ‘쟤들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고 언급하며 “공연 초반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 놓쳤던 것 같아요. 우리가 설명하는 것들이 처음 보는 분들에게는 쉽지 않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공연 2주차부터는 조금 더 이해하기 쉽도록 완급 조절을 하게 됐죠”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그가 소화해야 할 수많은 캐릭터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무엇일까.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헬베티카’ 역을 꼽았다. “헬베티카 역을 1막에서는 버드가, 2막에서는 더그가 많이 맡고 있어요”라고 설명한 정동화는 “기본적인 캐릭터는 비슷한데, 두 사람이 연기하는 헬베티카의 감성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헬베티카는 소위 말해 백치미가 있는 인물이에요. 사랑스럽고 예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답답하고 안타까워 보이는 인물이에요. 특히 수도사에게 이용당하는 모습이 가장 그렇죠”라며 “저는 대본에는 없지만 그런 부분을 고문 신에서 해소하려고 해요. 분명 헬베티카도 순진한 이면에 강직한 부분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장면에서는 항상 도도하고 차갑고 지적인 헬베티카를 구현해내려 하죠”라고 언급했다.
이어 정동화는 젊은 수도사 설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젊은 수도사는 수도사에게 학대를 받고 살면서 몸이 변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자세를 설정할 때도 동물원의 고릴라 같이 등을 구부리고 엉덩이도 뺐죠”라며 “걸음걸이도 고릴라처럼 뒤뚱 거리는데 사실 계속 허리를 숙이고 있다 보니까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있어요”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새롭고 독특한 형식만큼 이 작품은 배우들이 실수하면 실수할수록 관객들이 더 즐거워한다는 특징이 있다. 워낙 소화해야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배우가 순간적인 기지로 해결하는 모습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
정동화 역시 ‘죽은 아기’가 적힌 모자를 잘못 쓰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아기 목소리로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던 일화를 포함해 자잘한 실수들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큰 실수는 사다리 때문에 일어났다.
“‘고 투 헬’이라는 헬베티카가 부르는 넘버가 있어요. 그 넘버를 부르면서 일어나다가 사다리에 이마를 부딪쳤죠. 객석에서 ‘어머 어떡해’라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찔한 상황이었어요. 걱정하실까봐 ‘전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순간적으로 가사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가사를 ‘랄랄라~’로 대신했죠”
또 그는 사다리 때문에 겪고 있는 또 다른 어려움을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어요”라고 언급한 정동화는 “헬베티카 장면이나 1막 엔딩에 사다리 위에서 노래를 불러요. 그 장면을 연습실에서는 무서워서 잘 못했어요”라며 “공연을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용감하게 뛰어 올라가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한 번씩 무서울 때가 있어요”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정동화가 바라보는 뮤지컬 <구텐버그> 속 버드와 더그의 <구텐버그>는 어떤 느낌일까. 그들의 작품이 실제 공연으로 올라온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정동화는 빈 구멍이 많아서 이대로라면 올라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역시 버드와 더그의 <구텐버그>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그들의 <구텐버그>는 뮤지컬이 가지고 있는 기본 공식을 다 갖추고 있는 극이에요. 프롤로그부터 시작해서 쇼 스타퍼, 사건의 고조와 암시까지 다 들어가 있죠”라고 말한 정동화는 “결말이 조금 수정되고 그들의 바람처럼 풀 사운드와 몇 십 명이 취객으로 나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한번쯤 역대 캐스트가 다 같이 이벤트로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라고 바람을 전했다.
인터뷰 ②에서 계속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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