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正常)이 아닌 정상(頂上)이 정상(頂上)회의에 가면?”
“그 회의는 비정상(非正常)회의.”
다음달 일본에서 개최를 추진하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놓고 외교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우스갯소리다.
‘최순실 게이트’로 박 대통령에 대한 퇴진 압력이 높아지고 탄핵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박 대통령은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고집하는 듯하다. 국회에서 탄핵 결의가 통과되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기 때문에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회의 개최일까지 탄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은 회의 참석을 강행할 태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주 국회에서 “(한중일 정상회의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국내적 이유로 참석을 못하면 많은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언제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놓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시국에 해외에 나가 외국 정상들과 만나겠다는 발상을 한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검찰은 최순실씨를 비롯해 핵심 피의자 3명을 기소하면서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지목하고 피의자로 정식 입건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임박했고 박 대통령의 출국금지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주말마다 열리는 촛불집회에는 갈수록 많은 시민이 참여해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광화문의 밤을 환히 밝히고 있다.
이런 박 대통령을 만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리커창 중국 총리가 무슨 생각을 하겠나. 비선실세의 조종에 따라 앵무새같이 말하고 꼭두각시놀음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박 대통령을 과연 대화 상대로 여기기나 할까.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는 정상을 회의에 내보낸 우리나라가 외교상 결례를 했다고 불쾌하게 느끼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이쯤 되면 한중일 정상회의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가 될 것이 자명하다.
과거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통령이 아닌 총리가 대리 참석한 전례도 있다. 지난 2002년 11월4일 캄보디아에서 ‘아세안+3’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 당시 김석수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했다. 김 대통령이 해당 회의에 불참한 이유가 명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시기상으로 10월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다녀온 직후인데다 둘째 아들 김홍업씨가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상황 등을 고려한 것으로 짐작된다.
박 대통령은 201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 사회의 비정상을 바로잡아 기본이 바로 선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 어젠다로 제시했다. 대통령 스스로가 정상(正常)이 아닌데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은 비정상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동안 박 대통령이 한 정상회의는 비정상(非正常)회의였다. 이제라도 혼이 정상인 사람이 참석해야 한다. 청와대와 외교안보 라인에 정상적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박 대통령의 불참을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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