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일본 자동차 업계를 아우르는 키워드 한 가지만 고른다면 ‘재편’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재편이란 자동차 메이커 간 제휴 또는 연합의 움직임과 그 결과로 나타난 업계 구조의 변화를 망라하는 의미다.
일본 자동차 시장은 장기적인 경기불황과 올해 발생한 구마모토 지진, 미쓰비시자동차 연비 부정사건과 같은 악재가 겹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젊은 세대의 자가용 소유 욕구까지 감퇴하면서 시장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1990년대 770만대 수준이던 일본 내 신차 판매대수는 올해 500만대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악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자동차 메이커들은 공격적인 제휴와 빠른 협력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도화선에 불을 당긴 업체는 미쓰비시자동차다. 연비 조작으로 브랜드 이미지 추락과 판매 부진에 빠진 미쓰비시는 닛산자동차와 자본업무제휴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2,370억엔을 출자한 닛산자동차는 미쓰비시의 지분 34%를 차지하며 최대 주주가 됐다. 또한 자동차 업계의 맹주 도요타는 자사 그룹 산하의 소형차 메이커인 다이하쓰공업을 완전 자회사로 두는 조치를 취했다. 도요타는 지난해 5월 마쓰다와도 경영자원 활용, 상품 및 기술교류 등 협력관계 구축에 합의하며 제휴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일본 자동차 산업은 승용차 기준으로 8개사 체제를 유지해왔으나 업체 간 계속되는 연합의 결과로 산업구조가 크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요타를 중심으로 한 연합,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 그리고 독자노선의 혼다 등 삼두체제로 재편성될 수 있다는 관측이 부쩍 힘을 얻고 있다.
일본 자동차 업계의 급격한 산업구조 변화는 개별 기업들의 제휴·협력을 위한 다양한 동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예를 들어 미쓰비시는 연비 조작으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추락으로부터 신속한 탈출을 위해 닛산자동차와 업무제휴를 맺었고 업계 선두주자인 도요타·닛산자동차는 덩치를 더욱 키워 규모의 경제를 도모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완성차 업체들을 제휴와 협력으로 이끄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자동차 산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위기의식이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말 그대로 격변의 시대에 놓여 있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각국의 환경 규제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자동운전·커넥티드카와 같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혁신이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최근 열린 파리 모터쇼에서 메르세데스벤츠는 미래 자동차의 모습을 ‘CASE’로 표현했다. CASE는 정보통신과의 연결(Connectivity), 자동운전(Autonomous), 공유(Shared), 전기화(Electric)를 의미한다.
한편 최근 급속히 성장하는 전기차(EV) 부문에서 일본 업계가 서구에 뒤처지고 있다는 점도 업체 간 제휴를 활발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HV)에 주력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자사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왔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오는 2017년부터 HV를 에코카의 범주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 나오자 사업에 혼선을 빚었다. 이에 도요타는 테슬라의 전기자동차 ‘모델3’에 자극받아 2020년까지 전기차 양산체제를 갖춘다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는 자동차 산업시장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고자 하는 기업들의 발 빠른 재편 움직임이 시작됐다. 효과적인 재편을 위해 기업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미래 자동차 산업의 트렌드를 잘 이해하고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삼식 나고야 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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