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주말인 12~13일 이틀에 걸쳐 대기업 총수들을 잇달아 불러 조사한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 일정을 맞추기 위한 의도가 작용했다. 지난해 7월 비공개 면담 자리에서 오간 대화 내용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모금 등 각종 의혹을 푸는 핵심 열쇠라고 판단한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창근 SK수펙스 의장 등 이른바 ‘독대’ 그룹 총수 7인에 대한 소환조사 카드를 서둘러 꺼낸 것이다.
대기업 총수에 대한 소환이 이뤄지면서 검찰의 수사 칼날은 대통령을 향해 직행하는 모양새다. 그만큼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초읽기’에 돌입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이르면 15일께 박 대통령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수사가 이뤄지면 박 대통령은 현직으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있는 방법은 검찰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를 정해 방문 조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검찰은 청와대를 직접 방문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시기·방식을 조만간 청와대와 최종 조율하기로 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대면조사’가 원칙”이라며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시기와 방식 등을 알리고 최종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에게는 헌법상 불소추 특권이 있으나 검찰은 청와대 문건 유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직접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검찰 조사 일정에 대해 15일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일정과 변호인 선임 문제 등의 검토로 모레(15일)는 되어야 입장을 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대통령 조사가 16일께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검찰이 앞으로 박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예의 주시하고 있는 대목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모금 등의 과정에 개입했는지 여부다. 검찰은 대통령과 독대한 그룹 총수 7인을 소환 조사하면서 당시에 오간 대화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각 총수를 대상으로 비공개 면담 자리를 마련한 경위와 과정은 물론 대화 내용까지 파악해야만 두 재단을 둘러싼 각종 의혹의 진위를 가릴 수 있어서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 17명을 불러 오찬을 겸한 공식 간담회를 가진 시기는 지난해 7월24일. 당시 공식 행사 때 대통령은 “한류를 확산하는 취지에서 대기업들이 재단을 만들어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를 알렸다. 이후 박 대통령은 이틀에 걸쳐 청와대와 외부 모처에서 대기업 총수들과 개별 면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취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대기업 참여를 독려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아울러 검찰은 그룹 총수 개별 면담에 앞서 청와대에서 각 기업의 주요 현황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에도 주목하고 있다. 개별 보고서에 각 기업이 속히 해결을 원하는 ‘민원’ 내용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따로 마련한 면담에서 두 재단의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재단 설립에 거액을 낸 대가가 인정될 경우 ‘뇌물죄’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 과정에 최순실(60)씨가 영향을 주고 혜택을 봤다는 의혹이 사실로 규명되면 그에게도 뇌물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양호 회장을 이날 불러 조사하는 등 검찰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교체를 둘러싼 의혹 수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조 회장은 최씨와 연관된 평창올림픽 이권 사업을 거부해 앞서 5월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의혹에 휩싸인 인물이다.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최씨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청와대가 외압을 넣었다는 외압설이 일었다. 검찰은 조 회장을 상대로 평창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기 전후 일어난 각종 상황의 사실관계를 캐물었다.
/안현덕·김흥록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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