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지 벌써 8년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미국, 유로존 국가 및 일본 등 기축통화국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내리고 그것도 부족해 양적완화를 하더니 급기야는 교과서에도 없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경제 상황은 여전히 쉽지 않은 듯하다. 경기 둔화는 지속되고 물가 상승의 선순환 구조 역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들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통화정책이 구조조정이나 재정지출 확대 같은 다른 정책수단과 함께 가야 하는데 이 부문의 진전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풀린 돈이 정책당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중앙은행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가계와 기업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정부는 누적된 재정적자 때문에 총수요를 제대로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 다른 방안은 없을까. 있다. 유력한 대안이 아직 남아 있다. 바로 ‘헬리콥터 머니’다. 일견 황당하게 보이겠지만 그냥 소홀히 넘길 얘기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영구채를 발행해 중앙은행이 인수하게 하고 받은 돈을 정부가 원하는 분야에 정확히 뿌려주는 방안이다. 그야말로 정부가 헬리콥터를 타고 원하는 장소(부문)에 가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을 뿌려줌으로써 보다 직접 수요를 유발하자는 것이다. 정부 국채를 중앙은행이 일시적으로 사들여 민간의 자금 수요를 자극하고 투자와 소비 증대를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양적완화 정책과는 성격이 다르다.
헬리콥터 머니는 종전의 통화정책이 보여준 약점, 즉 원하는 곳으로 돈이 흐르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고 기대 인플레이션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찍어낸 돈을 소비유발 효과가 높은 저소득층에 대한 감세와 경기 및 고용유발 효과가 큰 인프라 확대에 투입하면 기대 이상의 큰 시너지를 얻을 수도 있다. 다만 재정규율이 이완되고 발행된 통화를 다시 회수하기도 어려워 자칫 초인플레이션과 대규모의 자본유출이 일어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어 정치한 운용계획 없이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총수요가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일상화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 경제 상황에서 우리만 예외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선진국처럼 금리 중심의 전통적인 통화정책의 한계를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준금리를 3.25%에서 1.25%까지 낮추면서 실효성 없이 가계부채만 늘고 정책수단만 소모했다는 지적도 있으니 말이다. 중앙은행은 분명 ‘퍼펙트 스톰’을 맞고 있는 우리 경제를 구해낼 수 있는 구원투수다. 이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정부의 재정정책과 더 높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새로운 통화신용 정책을 강구할 때가 아닌가 묻고 싶다. 임승태 전 금융통화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