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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청소년들, "제발 저희와 소통해 주세요"

공부보단 나라걱정이 먼저

왜 지지받지 못하는지 반성이 먼저

SNS를 통해 모이는 청소년들

울산 남구 롯데백화점 앞에서 5일 오후 민중총궐기 울산준비위원회 주최로 ‘울산시민 시국행동’이 열렸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의 모습./연합뉴스




“저희 같은 학생들도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이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나요?”

20만 개(주최 측 추산)의 촛불이 평화적으로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와 대책 마련을 외쳤던 지난 5일 광화문 광장. 아직은 앳된 모습으로 ‘대통령 하야’를 소리치던 이들이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교복을 입은 상태로 나라 걱정에 눈물을 흘리던 이들. 학교에서 책을 펴고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학생들이었다. 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뺏은 것은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이었다.

5일 1,000명이 넘게 모인 청소년들의 외침을 거리로 직접 나가 들었다.

△교실에 있어야 할 학생들, 그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



“학교에서 책을 보면 뭐가 해결 되는 거죠? 이렇게 나와서 소리쳐야죠” 중학교 2학년 박건우(15)군은 이 자리에 어떻게 나온 것이냐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박군은 혼자 광화문 광장 집회에 참석했다. 주위에서는 ‘공부나 하라’며 말렸지만 공부가 다가 아니라며 집회를 몸소 느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군은 “학교에서는 그냥 공부만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결국 정유라 같은 잘난 사람들은 잘 되고, 저 같은 힘 없는 사람들은 성공할 수가 없는 사회에서 공부를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국민적 ‘패배감’이 학생들에게 진하게 녹아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 당사자들의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소년도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구자건(19)군은 “문제는 최순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기에 가담한 공범들”이라며 “검찰은 이 사람들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군은 “자꾸 뉴스에는 최순실에 관련된 것만 등장하는데, 정작 문제가 된 핵심 주체는 따로 있는 것 같다”며 “모든 어른들이 이 사실을 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

전라도 광주에서 광화문 집회를 참여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상경했다는 이주영(17)양은 “예전에는 친구들끼리 모이면, 연애나 연예인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에는 ‘최순실 사태’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면 대화가 진행되지 않을 정도”라며 “그냥 정치 문제가 아니라 당장 나에게 닥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말려도 거리로 나오는 학생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5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청소년 집회 모습./이종호기자


△왜 젊은 층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지 반성해 봤으면…





4일 한국 갤럽이 발표한 대통령 국정 지지도에 따르면 1일부터 3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20~30대는 단 ‘1%’만 박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집회에 참여한 학생들에 따르면 설문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10대의 민심은 이보다 더 ‘흉흉’해 보였다.

서울 성북구에 살고 있다는 김다운(18·가명)군은 이번 ‘최순실 사태’를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라고 말했다. 김군은 “한국사 국정 교과서, 자유학기제 등 우리 같은 학생들이 몸소 겪게 될 제도들이 우리 뜻대로 고쳐지거나 만들어진 적이 없다”며 “왜 우리가 받아야 할 교육 제도에 우리 학생들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당장 이번 달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생 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서울 양천구에서 온 이시영(19)양은 “고3이지만 책만 보고 있을 순 없어 하루 시간을 내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며 “대통령 지지율이 점점 떨어져 한 자리 수를 기록했는데, 만약 10대 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면 거의 ‘소수점’ 정도의 지지율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양은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부터 지금까지 젊은 층에게 인기가 없는 대통령이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왜 젊은 층이 돌아서게 됐는지 잠시라도 고민해봤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난 5일 광화문 광장에서 행진을 하고 있는 학생들./사진=‘중고생혁명’ SNS


△더 이상 어른들을 믿지 못하는 청소년들, 직접 거리로 친구들을 모았다



청소년의 집회 참여는 기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번 5일 광화문 집회의 경우 중고생연대와 중고생혁명추진위원회, 전국중고등학교총학생회연합 등 3개 청소년 단체가 학생들의 집회를 기획했고, 집회 정보 공유를 위해 만들어진 ‘중고생혁명’ 페이지는 이번 주말에만 3,000명이 넘는 ‘좋아요’ 수를 기록해 청소년의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실제로 이날 집회에 참가한 대다수의 학생들은 SNS 상에서 공유된 ‘중고생혁명’의 홍보 포스터와 문구를 보고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허용준(16)군은 “SNS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포스터를 보고 참석했다”며 “혼자만 고민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청소년의 집회는 점점 더 커질 전망이다. 오는 12일 100만명(주최 측 예상)이 참가하는 ‘2016 민중총궐기’ 대규모 촛불 집회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청소년들의 집회 참여를 독려한 최준호(19) 중고생혁명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은 “4ㆍ19혁명이나 6월 민주항쟁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 앞에서도 가장 앞에는 중ㆍ고등학생이 있었다”며 “최순실 게이트의 주인공인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통해 책임을 지는데도 우리 중ㆍ고등학생들이 가장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고, 용납할 수 있는 세상을 어른들에게 만들어 달라고, 자신들도 힘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앞으로 살아갈 나라가 좀 더 정의로웠으면 하는 이들의 바람을 더 이상 어른들이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종호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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