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조기에 공식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기 시작한 데는 지난주 말 사이 서울 광화문 등 전국에서 벌어진 대규모 촛불시위가 결정타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사과 담화를 발표한 지난 4일 이후 여론의 추이에 촉각을 세워왔다.
그러나 지난주 말 주최 측 추산이기는 하지만 서울에서만 20만명이 촛불집회에 가담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청와대에는 두 차례의 사과로도 부족하다는 기류가 확산됐다.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은 6일 취임 이후 처음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규모 촛불집회와 관련해 “국민들의 준엄한 뜻을 매우 무겁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고 청와대 측은 밝혔다. ‘준엄’ ‘매우 무겁게’라는 단어가 동원될 정도로 사태 인식에 위기감이 돌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교복 차림의 중고생까지 대거 거리로 나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자 청와대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긴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야당이 주장하는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공식화하는 방안을 당초 예상보다 훨씬 당겨서 검토하게 됐다는 관측이다. 2선 후퇴는 박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카드로 여겨져왔다. 박 대통령은 두 차례 사과 발표에서 ‘권한 이양’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박 대통령의 사과 담화를 놓고 엇갈린 반응이 나오는 등 혼선은 가중됐다. 급기야 여당 내 비박계는 박 대통령 2선 후퇴 선언에 앞서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부터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야권과 동조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2선 후퇴 선언의 타이밍을 놓치면 ‘김병준 카드’가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사석’이 될 수 있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기류가 힘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비서실장과 허원제 신임 정무수석은 7일 오전 여야 대표들을 각각 예방해 취임 인사를 하고 박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공식 제안할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당은 영수회담 문제를 논의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김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 등 요구사항이 관철되기 전까지는 한 비서실장의 예방조차도 받을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여서 논의가 진전될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
영수회담이 성사되면 박 대통령이 직접 2선 후퇴 의사를 밝힐 전망이다. 담화 또는 청와대 발표를 통해 2선 후퇴를 공식화하는 것보다 여야 대표와의 대화에서 이를 국민에게 밝히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야당의 반발로 영수회담 가능성이 현재 낮은 상황에서 2선 후퇴라는 극약 처방을 쓰지 않고서는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1차 대국민사과(10월25일),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수석비서관 전원에 대한 사표 제출 지시(10월28일), 김병준 총리 지명(11월2일), 한광옥 비서실장 인선(11월3일), 2차 대국민사과 등 정국 변화에 따라 단계적으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지난주 말 촛불집회보다 이번주 말 촛불집회가 더 대규모로 개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시기가 훨씬 당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 2선 후퇴 공식화 카드는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 있어 섣불리 꺼낼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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