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69년 10월 동아시아와 유럽, 중동 각지에 주둔하는 미군에 핵전쟁 경계령을 내렸다. 핵전쟁을 시작할지 모르는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본인에 대한 악성 소문도 퍼뜨렸다. 자신이 공산주의에 강박감을 느끼고 화가 났을 때 자제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항상 핵 버튼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가게 했다. 이를 위해 실제로 핵미사일로 무장한 폭격기인 B52폭격기를 발진시키기도 했다. 이런 전략에는 고도의 노림수가 숨어 있었다. 당시 북베트남을 배후에서 지원하던 소련이 위협을 느껴 북베트남을 조종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 호치민(胡志明)이 파리에서 열리는 협상테이블에 나올 것으로 믿었다. 이 전략이 계획대로만 됐다면 미국은 승리를 취한 채 베트남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닉슨이 스스로를 비이성적인 인물로 비하하는 전략을 쓴 것은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 제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미치광이 이론(the Madman Theory)’이다. “나는 그것을 미치광이 이론이라고 이름을 붙이려 하네. 전쟁을 끝내기 위해 뭐든 할 것이라고 북베트남이 믿도록 할 것이네. 우리는 이런 이야기가 그들에게 흘러들어 가도록 해야 하네.” 닉슨이 백악관 핵심참모였던 H.R 할더만에게 설명한 말이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는 북한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에서 한마디로 ‘미치광이 정권’으로 평가된다. 그러면 김정은 정권은 정말 미친 것일까.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10일 ‘북한은 미친 게 아니라 지나치게 이성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핵무기 확보는 북한처럼 고립된 약소국의 거의 유일한 생존수단이라는 냉철한 계산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치광이로 비침으로써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미치광이 이론’을 철저히 활용한 고도의 노림수라는 것이다. 미치광이에는 몽둥이가 제격인데 그렇지 않다면 대신 무엇을 사용해야 할지 북한 해법이 복잡해진다. /이용택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