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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기행>동물원이 간직한 세계 도시의 기억

나디아 허 지음, 어크로스 펴냄





“오래된 동물원은 거만하지도 그렇다고 비굴하지도 않게 그 시대의 흐름을 담아낸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 어떤 건물들보다도 훨씬 더 진실하게 그 도시의 성격을 말해준다.”(318쪽)

대만 소설가 나디아 허가 2012년부터 2년간 전 세계의 동물원 14곳을 돌며 발굴한 그 공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에게 동물원은 단순한 유원지나 소풍 필수 코스가 아니다. 생(生)을 이어가는 존재들, 즉 사람과 동물의 크고 작은 기억을 증언하고, 과거의 기억에 비추어 오늘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곳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산물로 근대 시민사회 탄생의 초석이 된 파리 동물원,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잿더미가 되었던 베를린 동물원, 일본군에 이어 국민당과 인민해방군까지 수차례 주인이 바뀌며 파괴와 재건을 거듭했던 중국 창춘동식물공원… 다양한 동물원을 거쳐 간 존재를 통해 인간과 자연, 역사와 문화, 예술과 정치 등 우리 삶과 맞닿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가 유럽에서 처음 방문한 동물원은 1828년 대중에게 처음 개방된 영국 런던 동물원이다. 800여 종, 2만 마리의 동물이 서식하는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토록 거대한 공간은 한때 약탈의 상징 같은 곳이었다. 런던 동물원이 이처럼 많은 종의 동물을 보유하게 된 배경에는 제국주의 시대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동물이 있었다. 그러나 동물원을 단순 오락 공간으로 활용하지 않고, 학자들의 다양한 연구와 멸종 위기 동물 투자에 공을 들였다. 빈틈없는 운영과 충실한 정보 덕에 런던 동물원은 ‘약탈 제국주의의 산물’이 아닌 ‘세계 최대·최고’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단순한 동물원 소개에서 더 나아가 전쟁 중 학살당하거나 원유 유출 사고에서 살아남은 동물들, 우리를 탈출해 사람을 공격한 고릴라 실화 등을 바탕으로 ‘세계’라는 이 거대한 동물원에서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1만 7,0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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