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되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올 9월부터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규제 대상이 과도하게 많다는 비판론과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긍정론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헌법재판소는 법리 차원에서 고려해 합헌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요즘 청와대와 검찰 등 소위 힘 있는 기관 종사자들의 범죄와 일탈 사건을 보면 김영란법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었으리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제 직무상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두 가지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지금까지 관행과 미풍양속으로 여겨온 일들이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가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한 끼 식사와 약속한 선물 그리고 성의 표시가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금액 상한선과 직무 연관성이라는 엄격한 기준이 제시된 만큼 자기 점검 절차를 무시할 수가 없다. 다음으로 자신의 자리를 명예롭게 지킬 수 있는 길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힘 있는 자리는 다른 사람도 앉고 싶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선망을 받는 좋은 기회다. 이 기회는 오랜 노력과 많은 준비 끝에 도달한 만큼 본연의 목적에 충실해 개인의 영예를 지켜야지 자칫 잘못하면 단 한 번의 수상한 언행으로 모든 것을 잃는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
공자와 노자 하면 동아시아의 유가와 도가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점에만 주목하면 두 사람은 사사건건 서로 날카롭게 대립했으리라 판단할 수 있다. 상대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지만 노자는 공자의 핵심가치를 부정하고 공자는 노자의 삶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하고 있으므로 대립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반대만 하지 않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목소리를 내는 곳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공동체에서 나름 존경받을 만한 공적을 세운 뒤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두 번째 문제와 바로 연결된다. 공자는 무엇을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하라며 선난후획(先難後獲)의 길을 제시했다. 즉 공자는 지금의 자리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에 주목해야 한다는 본연의 역할을 성찰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공자의 말은 “여러분의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라”고 말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연설과도 일맥상통한다.
노자는 좀 더 과격하게 자리에 앉으면 물러날 각오를 하라고 말을 건네고 있다. 어느 정도 가지고서도 가득 채우려는 것은 그만두는 것보다 못하다. 어느 정도 날카로운데도 끝까지 벼리는 것은 오래 간직할 수 없다. 금과 옥의 보물이 집에 가득 있으면 늘 완전히 지킬 수 없고 부귀하고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벌게 된다. 공적이 이뤄지면 몸이 물러가는 것이 자연의 길이다(공수신퇴·功遂身退, 천지도야·天之道也). 여름은 맹위가 아무리 드높다고 하더라도 겨울까지 갈 수가 없고 여름철에 끝난다. 사람은 소유와 권력을 더 많이 더 오래 유지하려고 한다. 이 욕망으로 힘 있는 사람은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교만을 부리게 되다가 가장 낮은 곳으로 굴러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노자는 사람이 조금 가지면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탐욕의 습성을 날카롭게 경고하고 있다.
김영란법은 사람이 지켜야 할 명예, 함께 존중해야 할 상식을 따르지 않고 명예와 상식이 다 무너지고 오로지 세속적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상황을 규제하려는 시대적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관행을 따르다가 법의 심판을 받느냐 아니면 명예와 상식을 지켜 법이 사문화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따라서 김영란법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은 현실에 맞게 법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명예와 상식의 존중이라는 가치를 돌아보는 데 있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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