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 도전을 저울질하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친박·비박 양쪽에서 비난이 쏟아지자 출마 의사를 접었다. 무리하게 당권에 도전하기보다 휴식기를 가지며 대권에 나서는 게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지지를 받기는커녕 공격의 대상이 되며 오점을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때 보수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김 전 지사의 당내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텃밭 낙선에 이어 ‘낀박’ 신세로 전락하며 정치생명의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본지 7월27일자 6면 참조
김 전 지사는 27일 오전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저는 이번 새누리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대한민국과 새누리당의 발전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 전 지사는 친박·비박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오히려 배후설이 나돌며 잡음만 커졌다. 친박계는 비박계가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불출마로 비박계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지자 김무성 전 대표가 김 전 지사를 끌어들였다고 의심했다. 김 전 대표는 이에 공식 해명자료를 내며 부인했다.
비박계는 친박계가 대표 주자가 없자 김 전 지사를 미는 대신 친박 옹호에 나서달라고 요구하는 등 뒷거래를 했다고 제기했다. 여기에 청와대까지 가세했다며 반발했다. 그러자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은 “‘개인적인 의견으로 모양이 좋지 않다’며 부정적인 생각을 말씀드린 것이 전부”라고 선을 그었다. 김용태·정병국·주호영 등 비박계 당권 주자들은 김 전 지사의 출마설에 ‘후보 단일화’로 맞서겠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당권 도전에 대한 정치적 명분도 부족했다. 지난 총선에서 험지출마를 요구한 당 지도부의 권유를 뿌리치며 여당의 전통 텃밭 대구까지 내려갔지만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패했다. 대구경북(TK)에 야당 입성을 허락한 만큼 아직은 자숙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또 김용태 의원의 정치계 입문을 도운 김 전 지사가 후배 앞길을 가로막았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세종시 수정론에 앞장서며 원안 고수에 힘썼던 친박계를 수세에 몬 김 전 지사가 친박 지원을 받으려고 하자 친박·비박 모두 뜬금없다는 반응이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김 전 지사의 불출마 선언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 전 지사, 혁신의 깃발은 버리고 친박·비박 양다리 걸치려다가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참 딱하다”고 꼬집었다.
/류호기자 r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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