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당사국 외교장관들이 일제히 참여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하루 앞둔 25일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NCC)에는 자국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참가국들의 외교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ARF를 비롯한 이번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을 계기로 냉랭해진 한중관계가 여실히 드러난 반면 북중 간에는 과거에 비해 한층 친밀한 기류가 포착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날 북한과 중국은 ARF를 계기로 2년 만에 외교장관회담을 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회의장 밖까지 나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맞이한 데 이어 리 외무상의 등에 손을 올리는 등 잇따라 친밀감을 드러냈다. 왕 부장은 리 외무상에게 “취임한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했고 리 외무상은 상호 관계 발전을 언급하며 “축전 보내주신 것 감사히 받았다”고 말했다. 회담 후 북측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두 나라 외무상들이 조중 쌍무 관계 발전 문제를 토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비춰볼 때 양측은 경색된 북중관계 복원 가능성에 대해 상호 의사를 타진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의 북핵 불용 입장이나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주장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나 최근 사드 배치 등으로 한미와 관계가 불편해진 중국이 북한 끌어안기에 나서며 대화재개를 적극 모색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양측이 고위급 교류 등 관계 회복 가능성을 타진할 수도 있다.
이 같은 기류에 맞서 우리 정부는 미국·일본과의 북핵 공조에 적극 나섰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가진 회담에서 대북제재와 압박 모멘텀을 유지·강화하기 위한 협력을 계속하기로 했다. 윤 장관은 또 오는 28일 출범을 앞둔 일본군 위안부 지원재단(화해·치유재단) 설립 준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일본 측이 예산으로 재단에 내기로 한 10억엔의 출연 시기도 가닥이 잡힐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오후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양국은 북핵 공동 대응을 강조하며 한미동맹의 결속력을 과시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회담에서 “한미는 북한의 무기개발이라는 도전과 무책임한 핵활동, 역내 불안정이라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밝혔다. 윤 장관도 “우리의 동맹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며 깊고 넓다는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전날 밤 윤병세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는 사드 문제를 놓고 팽팽한 기 싸움이 벌어졌다. 왕 부장은 “최근 한국 측의 행위는 쌍방(양국)의 호상(상호) 신뢰의 기초에 해를 입혔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한국 측이 우리 사이의 식지 않은 관계를 수호하기 위해 어떤 실질적인 행동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들어보려고 한다”고 밝혀 사실상 사드 배치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윤 장관은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우리 입장을 설명하며 불가피성을 피력했다.
남북 간에는 별도의 회담이 계획되지 않았으나, 윤 장관과 리 외무상이 이날 각국 외교장관들의 공용 공간인 NCC 1층 휴게실에서 조우해 악수를 나눴다. 이날 오후 윤 장관이 휴게실에 들어갔다가 리 외무상과 마주치자 먼저 수인사를 건넸고 서로 ‘반갑습니다’라는 말을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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