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대는 뜨거운 눈물이, 또 다른 무대는 설렘이 폭발한다. 각기 다른 분위기의 2인 극 뮤지컬 두 편이 호평 속에 순항하고 있다. 배우는 둘 뿐이지만, 두 사람이 빚어내는 찰떡 호흡에 관객은 속 꽉 찬 무대로 빠져든다. 각각 창작 초연·한국 라이선스 초연으로 국내 관객과 만나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와 ‘키다리 아저씨’다.
◇‘음악의 힘’ 라흐마니노프=거센 파도가 지나가고 평온을 되찾은 바다 같았다. 창작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의 유명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와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를 주인공으로 한다. 1897년 ‘교향곡 제1번’에 대한 혹평에 3년간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라흐마니노프가 달 박사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뒤 재기에 성공한 실화를 바탕으로 ‘둘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나’ 하는 상상을 붙여 만들었다. 아름다운 음악은 이 작품의 제3의 배우다.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답게 팝피아니스트 이범재와 4인조 현악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자리 잡고 라이브 연주를 선보인다. 특히 귀에 익숙한 라흐마니노프 명곡에 새로 작곡한 넘버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아름답게 음울한’ 원곡의 느낌과 긴장감 넘치는 극의 분위기를 제대로 반영한다.
알아내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 둘의 팽팽한 갈등과 긴장이 신뢰와 믿음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도 연기의 강약 조절 속에 매끄럽게 무대에 드러난다. 라흐마니노프가 애써 감추려던 아픔을 오열하며 토해내고, 달 박사가 옆에 앉아 눈물을 훔치며 묵묵히 고백을 들어주는 장면에선 배우들의 열연과 관객의 감정이입이 절정에 달한다. 라흐마니노프의 트라우마를 어지럽게 형상화한 무대도 인상적이다. 왜 음악을 하려 하는가. 왜 (사람들을) 치료하려 하는가. 서로에게 질문이자 치유가 되어준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긴 여운을 남긴다. 라흐마니노프 역은 박유덕·안재영, 달 박사 역은 정동화·김경수가 연기한다. 8월 25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설렘 가득’ 키다리 아저씨=한 단어로 요약하면 ‘설렘’이다. 미국 여류작가 진 웹스터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2007년 미국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고아원의 소녀 ‘제루샤’가 익명의 후원자인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성장 스토리다. 매달 한 번 후원자에게 답장 없는 편지를 보내며 그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가던 어느 날. 제루샤 앞에 룸메이트의 젊은 삼촌 제르비스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진다. 뮤지컬은 원작의 감성을 충실하게 무대로 가져왔다. 편지글 형태로 써진 소설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두 배우의 대사도 제루샤의 편지를 (번갈아가며) 읽는 것으로 처리한다. 둘이 마주 보고 대화하는 순간은 극 말미를 제외하면 거의 없지만, 마치 듀엣곡을 부르듯 하나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각자의 공간에서 웃고 우는 모습은 풋사랑의 추억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매력적인 키다리 아저씨 캐릭터의 발견도 큰 수확이다. 화자로서 글 속에 성격과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난 제루샤와 달리 소설 속 키다리 아저씨는 ‘제루샤의 상상’을 바탕으로 독자가 다시 상상해야 하는 인물이었다. 무대에선 소녀의 편지에 기뻐하고 때론 질투하며 오묘한 감정을 드러내는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되며 원작의 느낌에 뚜렷한 개성까지 담아냈다. ‘더 컬러 오브 유어 아이즈’(The Color of Your Eyes)를 비롯한 서정적인 음악과 위트 넘치는 대사, 크고 작은 상자를 활용해 다양한 공간과 세트를 만들어내는 무대 연출도 돋보인다. 키다리 아저씨 역에 신성록·송원근·강동호, 제루샤 역에 이지숙·유리아. 10월 3일까지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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