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테러와 정쟁에 흔들려온 터키 경제가 군부 쿠데타로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의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로 정국을 뒤집으려던 군부의 시도는 하룻밤의 꿈으로 끝났지만 불안한 정국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투자자 이탈 우려로 리라화 가치를 크게 떨어뜨렸고 치안에 대한 공포를 더해 관광대국의 명성에 찬물을 끼얹었다.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달러 대비 리라화 환율은 전장 대비 4.22% 폭등(리라화 가치 하락)해 달러당 3.0157리라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1월26일(3.0213리라) 이후 최고치다. 전날 쿠데타 세력이 수도 등을 손에 넣었다는 소식에 달러 대비 리리화 환율은 한때 5.42%나 치솟기도 했다. 이날 하루의 리라화 가치 낙폭은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쓸었던 지난 2008년 10월 이래 가장 컸다. 환율 변동의 직접적 원인은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지만 후폭풍을 우려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단기 유동성에 의존도가 높은 터키 경제가 내정 불안으로 흔들리는 와중에 쿠데타를 만나 더욱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올 들어 총선을 두 번이나 치를 정도로 정쟁을 거듭해온 터키는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 반군의 테러 공격으로 치안 상태가 불안하다. 또 지난해 11월 터키군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 사건 이후 러시아의 경제제재까지 받고 있다는 점은 떠오르는 신흥국으로 주목받았던 터키 경제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시리아 등 인접국의 내전도 풀기 힘든 숙제다.
전문가들은 터키가 불안한 신흥국 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모두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막대한 부채와 빈약한 외환보유고, 경상수지 적자, 장기집권에 따른 정정불안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많은 전문가는 터키 경제의 외채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현재 터키의 총외채는 3,98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55.3%에 달했다. 지난해 9월 말까지 5년간 평균치에 비해 10.3%포인트 높아졌다. 이 가운데 민간부채는 71.3%에 달하고 단기 외채 비중도 높은 편이다. 이번처럼 정정 불안으로 외환 시장이 출렁대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실물경제까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대해 터키의 한 은행가는 “우리는 테러리즘과 쿠데타, (테러 등에 대한) 정보 부족이라는 문제가 있다”며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투자를 회복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리라화 약세 기조 탓에 경기부양을 계획대로 추진하지 못할 처지다. FT는 이르면 올 하반기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계획을 세웠던 터키 중앙은행이 이번 쿠데타를 계기로 금리 인하를 보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얼어붙은 관광산업도 터키 경제를 어둡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정정불안은 터키 GDP의 4%를 차지하고 있는 관광업을 고사위기로 내몰고 있다. 터키 정부는 유명 관광지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테러로 외국인 관광객 수가 줄었으며 5월 기준으로 관광업 성장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터키의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은 3∼4%로 지난해 4.5%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불런트 굴테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 교수는 “터키는 생산성을 높이고 교육이나 수출 분야에서 장기적인 투자를 하지 않으면 저성장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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