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직전 미국 정부 ‘장밋빛 경기전망’
브래독은 잘 나가는 라이트 헤비급 복서로 높은 대전료를 받으면서 뉴저지의 단독주택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생활을 하고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1929년 10월 뉴욕 증시의 대폭락을 기점으로 그의 삶은 추락했다. “버는건 전부 택시회사에 투자했는데, 뉴욕에서 택시회사가 망할 줄 누가 알았겠냐. 손자에게 물려주려고 했는데”라고 말하며 브래독은 치를 떤다. 그도 그럴 것이 그해 연초부터 정부의 경제전망은 장밋빛 일색이었다. 1929년 1월 1일자 뉴욕타임스에 “과거에 근거해 미래를 예측한다면 새해는 축복과 희망의 한 해가 될 것”이라는 기고가 실렸을 정도였다.
미국 정부의 빗나간 경기전망과 뒤이은 대공황으로 브래독과 그의 가족이 당한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다. 한겨울에 가스요금·전기요금이 밀려 난방과 전기가 끊기고 우유 값조차 내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팬케이크를 하나 놓고 꼬맹이 딸에게 “아빠는 이미 다른 데서 많이 먹었으니, 아빠 것 좀 먹어줄래?”라고 말하는 브래독의 모습은 의연하기보다는 처연하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거리를 찾아 부두를 전전해보지만 밀려드는 실업자 물결에 일감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1929년 3%에 머물던 미국의 도시 실업률이 1933년 37%로 수직상승하는 동안 노동자들의 삶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돌변했다. 브래독의 동료 막노동꾼 윌슨은 “힘을 모아 함께 싸워야 합니다”라고 브래독에게 말한다. 그러나 브래독은 “누구와 싸우죠?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주먹을 뻗을 순 없잖냐”며 한숨만 지을 뿐이다.
#“적어도 누가 때리는지는 알고 싶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경제의 성장 궤도는 활황과 침체가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50년 주기의 장기적인 경기순환을 이론화한 러시아의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는 “4단계를 거치는 중기파동이 5~6차례 되풀이되면 장기파동(콘드라티예프파동)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경제학자 루이스는 실질국민소득만으로 경제성장 추세를 분석했을 때 10년 주기의 중기파동과 50~60년 주기의 콘드라티에프파동 사이에 20년 정도의 성장순환 사이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는 단기·중기·장기파동을 기록하면서 번영과 침체과정이 순환돼왔다. 지난날 영국의 산업혁명과 미국 철강·철도산업 발전이 그랬고, 오늘날 디지털산업 발전과정도 경기의 부침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영화 ‘신데렐라맨’에서의 경제 상황은 활황의 정점에서 공황으로 급전직하한 모습이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온다지 않는가. 일용직으로 전전하며 정부의 빈민 구제 자금에 의지하던 브래독은 다시 링에 오를 기회를 얻는다. 다만 문제는 상대가 ‘링의 살인자’라고 불리는 강적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아내(르네 젤웨거)는 남편이 죽을지도 모르는 싸움에 결사반대다. 이 때 브래독은 아내에게 간청한다. “링에 올라가서 싸우게 해줘. 적어도 누가 때리는지는 알 수 있잖아?”
#경기전망 ‘장밋빛’ 보다는 실상을 알려야
결국 브래독은 성공했다. 경기에서 이겨 돈을 벌었고 다시 뉴저지에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대공황 당시 가난한 일상에 지친 미국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주기까지 했다. 마치 박찬호·박세리가 IMF 외환위기로 고통받던 우리 국민에게 큰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난주 우리 정부는 소비 회복에 따른 생산 및 투자 증가로 9월 전체 산업생산이 54개월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하는 등 경기회복세가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무엇보다 최근의 수출 급감과 가계부채 급증이 심상찮다. 오랜 경기침체로 젊은층은 취업길이, 중장년층과 노년층은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들 한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선 장밋빛 경기전망보다는 정확한 실상을 알게 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점을 정부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영화 속 브래독이 가장 힘들었던 것도 ‘주먹(경제불안 요인)이 어디서 날아오는지는 알지 못한 채 두들겨 맞는 현실’이었다고 하지 않았나? /문성진기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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