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부터 묻고 가자. ‘조선마술사’의 흥행이 생각보다 저조했는데 아쉬움은 없었나.
▶속이 많이 상했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찍어도 흥행이 안 될 수가 있는 법이라지만 나는 그렇게 훌훌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나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한 거 같은데, 왜 나는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에 긴 시간 사로잡혀 있었고 뭘 해도 잘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솔직히 ‘봉이 김선달’ 개봉을 앞둔 지금도 불안하고 무서워서 때론 사람 앞에 서는 게 싫을 정도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좀 더 분발해서 잘 해보자 생각도 했고, 만약 흥행이 안 된다더라도 얻는 게 없는 것도 아니리라 여기기로 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마음을 붙잡으려고 한다. 근데 그게 또 막 쉽지는 않다(웃음).
◇한두 번 실수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드라마 쪽(리멤버)은 또 잘 되고 있었는데 그렇게 힘들었나.
▶나는 잘 되는 것보다 잘 안 풀리는 것에 대해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 것 같다. 잘 되는 쪽에는 별로 신경이 안 쓰이는데 못한 것에는 ‘왜 그럴까. 나는 왜 안 될까.’라고 계속 매달리게 되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이번 영화 ‘봉이 김선달’도 사극에 밝은 분위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전작 ‘조선마술사’와 여러모로 겹쳐 보이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코믹하고 밝은 캐릭터에 유독 끌려서 선택하게 된 건지.
▶그동안 내가 드라마 등에서 해왔던 캐릭터가 무거운 운명에 짓눌리거나 심각하게 우울한 역할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이에 걸맞은 밝은 모습을 좀 더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도 물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난 꼭 코미디만이 아니라 장르 가르지 않고 모든 영화를 다 하고 싶다. 다만 아직 어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라는 게 문제다. ‘봉이 김선달’이 전작과 비슷하게 밝은 분위기의 사극이라는 게 왜 마음에 걸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가 결심한 건 캐릭터에 차별을 많이 두자는 것이었다. 전작이 남녀 간의 사랑에서 알콩달콩함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본격적으로 코미디를 했다. 젊고 섹시한 사기꾼을 만들어보자 다짐했다.
◇‘섹시한’ 유승호는 분명 새로운 듯하다. 어떤 노력을 했나.
▶솔직히 내가 섹시한 거랑은 거리가 좀 멀다. 어떻게 하면 섹시할 수 있을까를 상당히 고민했는데 결국 마음먹기가 중요한 것 같더라. ‘나 이제부터 섹시할 거야!’ 같은 거(웃음). 영화 속 주모를 유혹하는 장면이 있는데 보시는 분들이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벽을 치고 얼굴을 쓰다듬고 목소리 톤을 가다듬고 여러 방면으로 섹시한 느낌을 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극 중 ‘김선달’은 섹시하기도 하지만 웃기기도 하다. 코믹 연기도 많이 해본 편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또 코믹함과도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내가 꼭 하고 싶은 역할이었고 이왕 하기로 했으니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제대로 확 망가지자고 생각했다. 마침 극 중에서 여장도 하고 뻐드렁니도 붙이는 등 여러 변장을 한다. 그래, 말로 웃기는 건 힘드니깐 차라리 얼굴로 웃겨보자 싶어서 최대한 웃기게 분장하려고 했다. 솔직히 주모 씬도 그렇고 변장도 그렇게 예전 같으면 쑥스럽고 창피해서 어쩔 줄을 몰랐을 것 같은데, 이번에 촬영하면서 스스로도 내가 되게 뻔뻔해지고 틀을 깨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굉장히 즐거웠다.
◇배우 고창석과는 콤비로, 조재현과는 맞서는 역이다. 나이 차가 꽤 나는 선배들과 연기가 힘들지는 않았나.
▶‘배우 대 배우’라고 생각하자 여러 번 다짐했지만, 막상 조재현 선배님 앞에 서면 그렇게 말도 못 하겠고 떨리더라. 다행이고 감사한 건 내가 긴장하고 있는 걸 아셨는지 카메라가 멈추면 장난도 많이 쳐주시고 말도 많이 걸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고창석 선배님 같은 경우는 예전에 ‘부산’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는데 당시 역할이 상당히 무서웠다. 특히 내가 많이 맞는 역할이라서(웃음) 처음에 진짜 어색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같이 사기를 치는 패거리고, 친구 같은 형으로 나온다. 서로 친해지려고 많이 노력하고 또 선배님이 많이 챙겨주셔서 어느 순간부터 선배님이 참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그룸 엑소의 시우민(견이 역)과도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의 함께 하는 느낌을 보자면 김선달은 마치 큰 형같이 의젓하고 견이는 막냇동생 같다. 실제 나이로는 승호씨가 3살 어린 걸 알고 내심 놀랐는데 이 의젓함은 대체 어디서 나오나.
▶어렸을 때부터 작품을 하다 보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리다는 게 너무 싫었을 때도 있었는데 어른들의 사이에 껴서 뭔가 불이익을 받고 상처받는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에 더 공감했던 시절도 있었고 아무래도 무심결에 어른스러운 것을 찾게 됐던 것 같다.
◇나이 차이 때문에 연기가 불편하진 않았나. 관계는 어땠는지.
▶민석이(시우민의 본명) 형 외모가 워낙 동안이지 않나. 촬영하면서 나한테 ‘형님’, ‘형님’ 그러면 진짜 어리고 귀여운 동생 같은 마음이 막 들어서 전혀 그런 게 없었다. 형은 정말 장난기도 넘치고 잘하는 것도 많고 성격도 밝다. 나는 조용한데다 분위기 띄우는 것도 잘 못하는데 옆에서 신 나게 해주니깐 정말 좋았다.
◇필모그라피를 보면 ‘조연’을 하는 경우가 드물고 거의 타이틀 롤이다. 이젠 익숙한지 아니면 여전히 부담인지.
▶다른 사람이 보면 배부른 소리겠지만 저도 고민이 많은 게, 역부족인 것 같은데 들어오는 작품 대부분이 주연, 주연, 주연이다. 내가 그렇게 앞장서서 끌고 나가는 그런 사람이 못 되고 누가 앞서면 따라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때론 버겁고 힘들다. 베테랑 선배님들이 주연을 맡고 나는 그 옆에 붙은 감초 역할 같은 것도 해보고 싶다. 송강호 선배님이나 그런 선배님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진짜 진짜 진짜 영광일 것 같다.
◇요즘 배우들의 해외 진출이 잦아지는데 생각은 없나.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없다. 우선 한국에서 먼저 제대로 하고 싶다. 영어나 중국어 같은 외국어도 별로 공부하고 있지 않아서(웃음).
◇최근에 즐거운 일은 없었나.
▶드라마 ‘리멤버’ 끝나고 난생처음 해외여행을 갔다. 싱가포르에 친구랑 함께 갔는데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가서 롤러코스터만 10번을 넘게 타고 센토사 해변에서 보는 눈 없이 수영하고 모든 게 다 그냥 좋았다. 앞으로도 여행을 가고 싶긴 한데 성격상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마음은 가고 싶은데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일하는 것 없이 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좀 있는 것 같다. 내가 너무 얽매여있는 건 같기도 한데 솔직히 이제는 그런 게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다.
◇영화를 보러 오실 관객들에게 한 마디.
▶뭔가 교훈을 준다거나 이런 부분을 느껴주세요, 라고 말할 부분은 없다. 애초에 진짜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고, 의도대로 편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나온 것 같다. 다들 그렇겠지만 우리 현장 역시 ‘최고’라는 말이 모자랄 정도로 즐겁고 에너지가 넘쳤다. 우리가 현장에서 즐거웠던 만큼만 웃고 가신다고 해도 성공이지 않을까.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사진제공=CJ 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