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측의 요구로 권고 사직을 했다. 50대 초반, 아직 창창한 나이. 아내와 딸아이에게는 퇴직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출근한다며 집을 나섰지만 갈 곳이 없어 야산을 간다. 사무직 과장이었으나 40대 초반에 퇴직하게 된 한 남성은 생계가 막막해 대리운전 일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 사무직 과장을 하다 퇴직한 이들의 이야기다.
회사에서 나온다 한들 인생 제2막을 열기에는 삭막한 현실이다. 퇴직한 남성을 ‘삼식이(집에서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먹는 남편)’라 부르는 풍조도 있다. 퇴직은 한 순간에 삶을 휘청거리게 한다.
지난 5월 현대중공업은 과장급 이상 직원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희망퇴직 위로금은 약정임금 40개월 치, 고등학교와 대학생 자녀 학자금 선지급 등이었다.
생산직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희망퇴직신청서를 냈다. 퇴직 후 일자리 찾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무직의 사정은 다르다. 중장년층이 재취업할 수 있는 대다수 일자리는 기술직으로, 평생 사무직으로 일해 온 이들은 갈 곳이 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앞다퉈 재취업 지원센터 설립에 나섰다. 그러나 설계된 교육프로그램이 퇴직 후 생활설계, 창업과 재취업 방법, 자격증 소개, 심리 상담, 건강, 재무 등에 국한돼 있다. 퇴직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술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비로 운영되는 한국 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의 실업자 기술 과정은 국비 지원을 받아 무료로 용접·전기·기계설계 등 전문 기술을 배울 수 있지만, 무료 지원 과정은 2∼3개월이면 끝난다. 평생을 사무직만 보던 퇴직자가 2개월 배운 기술로 재취업에 뚝딱 성공할 리 없다.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박광일 학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퇴직자들이 2∼3개월 익힌 기술로 제2의 인생을 꾸려가기는 어렵다”며 “적어도 6개월이나 1년 이상의 기술지원 과정을 이수해야 재취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학장은 “퇴직 근로자가 어떤 교육을 받고 기술을 습득하길 원하는지 조사해 퇴직 근로자 맞춤형 과정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며 현실과 맞지 않는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지적했다. 이어 “사무직 근로자는 재직 시 은퇴 후 인생설계를 준비하고 퇴직 후에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인경인턴기자 izzy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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