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서울 여의도인 듯한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한강변 옥상. 밋밋할 뻔한 그림 위에 얹혀진 흰색 물감자국을 가리키며 작가 김정헌은 ‘아몰랑’ 구름이라고 했다. 별다른 설명도 않고 “알아서 생각하라”고 했다. 지난해 유행한 신조어인 ‘아몰랑’을 끌어온 말풍선 덕에 재미없을 뻔한 풍경화는 해학적이고 함축적인 그림으로 다시 읽힌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패러디 그림에 자장면을 그려넣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제목 붙인 것이나 검은 바다 위에 노란색 격자 모양 창을 띄운 ‘희망도 슬프다’ 등 그의 작품들은 웃어넘기려다가도 곱씹게 만든다. 1979년 ‘현실과 발언’ 창립 멤버인 김정헌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2004년 이후 무려 12년 만에 개인전을 열기까지 그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등 미술행정가로 외도했다. 그가 오랜만에 붓을 다시 잡은 지금 공교롭게도 미술시장에서 ‘민중미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작가는 “민중미술은 미술이 사회와 관계를 갖고자 출발했던 미술운동인 만큼 작품가치보다 상업적 가치로만 재단한 조명이 썩 환영할 일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래서 그는 ‘생각의 그림·그림의 생각:불편한, 불온한, 불후의, 불륜의,…그냥 명작전’이라는 긴 제목의 이번 개인전의 장소로 비영리 대안공간인 아트스페이스 풀을 택했다. 4월10일까지. (02)396-4805
/조상인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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