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번호판 없이 여섯달마다 차량 교체
청바지 차림에 자유분방·소탈한 잡스, 내부자들에겐 엄격한 규정으로 대해
WSJ 기자 시절 전현직 임원 등 만나 우리가 몰랐던 애플 이야기 풀어내
후계자 팀 쿡 매출 신장 이끌었지만 차세대 혁신제품 못내놔 비전 의구심
"정상 지키기 얼마나 힘든지 알리고파"
"비전을 지닌 리더, 창조적인 천재, 반항아, 체제불응자, 독창적이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CEO, 최고의 혁신가, 궁극의 모험가. 전부가 사실이며, 이 모든 존재가 한 사람에게 걸맞은 이름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이후 그의 자리를 대신해 애플의 수장을 맡은 팀 쿡 신임 CEO는 추도식에서 잡스를 이렇게 평가했다. 혁신의 아이콘인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는 2011년 10월 5일 그렇게 애플을 떠났다.
'잡스가 없이도 애플은 괜찮을까'. '어떤 위대한 기업이 혁신을 이끈 지도자 없이도 위대한 기업의 지위를 지킬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 이후의 애플'은 이런 고민이 담긴 책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애플 담당 기자로 일한 저자가 5년 동안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스티브 잡스 임기 마지막 3년과 팀 쿡 취임 초반을 다뤘다.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애플의 특성상 취재가 쉽지 않았지만, 저자는 애플의 전현직 임원은 물론 거래업체와 애플 감시자 등 200여명의 관계자들을 만나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들을 책에 실었다.
"모든 이름과 세부 내용은 실제"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는 저자를 믿고 책을 넘기다 보면 잡스가 평소 번호판을 달지 않고 운전을 했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애플의 본사가 있던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자동차 번호판을 달지 않아도 6개월간은 처벌하지 않는데, 잡스는 이 사실을 알고 똑같은 차종을 여섯 달마다 새로 임대하는 수법으로 제재를 피해 갔다. 항상 청바지를 입고 신제품에 대해 설명하던 잡스는 외부인에게 자유 분방하고 소탈한 인물로 비쳐진다.
하지만 내부자들에겐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슬라이드는 애플의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인 '키노트'로 제작하는데 잡스는 이 과정에서 엄격한 규정을 뒀다. 규정에 따르면 한 프레젠테이션 내에서는 같은 서체만 사용해야 하며, 요점을 나열하는 큰 점은 세개나 다섯개를 쓰며 네개는 안되고, 제목은 가운데 선에서 30퍼센트 위쪽에 붙여야 한다. 파일 크기는 8메가바이트를 초과하면 안된다.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잡스의 모습뿐 아니라 책을 통해 애플 내부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잡스는 애플의 상위 100인을 초대하는 비밀스런 모임을 가져왔다. 상위 100인이란 회사의 두뇌집단을 뜻한다. 잡스는 이 모임에서 신제품을 처음 선보이거나 제품 출시 전 임원들과 토론을 벌이곤 했다. 상위 100인은 잡스의 마음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이밖에 저자는 잡스가 떠난 팀 쿡 체제의 분위기와 상황 등도 마치 눈 앞에서 본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잡스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잡스가 떠난 이후 그의 빈자리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다. 저자에 따르면 팀 쿡의 애플은 전형적인 기업 성적표 면에서는 합격점이다. 쿡은 잡스가 사망한 이후 애플의 매출 신장에 크게 기여를 했다.
하지만 저자는 애플의 존재 이유와 미래 비전인 '혁신' 측면에서 의구심을 제기한다. 팀 쿡 체제 이후 몇 년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차세대 혁신 제품이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저자는 "애플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어떤 제국이든 정상의 자리를 영원히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리고 싶어서 책을 썼다"고 말한다. 2만2,000원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