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몰라 찾고는 한다. 휴대폰·안경·시계 등을 매번 다른 곳에서 찾으면서 이제부터는 자기 자리를 정해 그 자리에 둬야겠다고 생각한다. 세상 만물에는 모두 자기에게 맞는 제자리가 있다. 사물이 항상 제자리에 위치해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고 필요한 시기에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집을 이사하면서 가족들이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정한 게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모든 물건을 사용한 후 제자리에 두는 것이었다.
사람에게도 제자리가 있다. 사람이 자기에게 맞는 제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무언가 어색하고 불안하다. 그 자리가 중요한 자리이면 더욱 그러하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면 그 사람도 힘들지만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는 더욱 힘들어진다. '금강경'에 '환지본처(還至本處)'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혜문 스님이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를 되찾는 운동을 하면서 자주 인용한 문구이다. 그런데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잃어버린 문화재뿐일까.
잃어버린 양심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을 포함한 수많은 인재가 제자리를 찾지 못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치를 가지게 되고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 사회의 수준은 구성원이 제자리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학생은 학생의 자리에서 학업의 본분을 다하고 교육자는 학생을 가르친다는 본래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제자리를 지키고, 근로자는 농성장이 아닌 근로현장이라는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기업은 정당한 이윤추구를 통해 제 역할을 수행하고, 국회는 정쟁보다는 국민을 위한다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다면 우리 사회는 아름다움을 더해 갈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갈등과 사고 등 일련의 위기는 제자리 찾기로부터 그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세월호 사건에서 선장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면 그 꽃다운 학생들의 덧없는 희생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 고전인 '한비자'에도 '월관지화(越官之禍)'의 고사가 나온다. 춘추전국시대 한나라 소후 임금이 모자를 담당하는 관리가 잠이 든 임금이 추울까 봐 의복을 덮어 주었는데 이를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 월권을 했다는 이유로 심하게 벌주었다는 얘기다. 이 고사도 자신의 제자리를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그리하여 시인과 촌장이 풍경이라는 노랫말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돌아오는 풍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정말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인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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