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벌처투자 펀드들이 부실채권 매입을 통한 기업 인수합병(M&A)를 대폭 늘리고 있어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지난 2년간의 금융위기가 지나면서 자산가치가 크게 떨어진 기업들이나 외부 부채 비율이 높은 기업들이 대거 벌처펀드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월가 등 국제 금융시장에서 부실채권을 이용해 회사 경영권을 인수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부실기업의 채권을 확보한 뒤 이를 이용해 경영권을 인수하고 이를 되팔아 돈을 챙기는 인수합병(M&A) 건수는 올 들어 140건에 이른다. 규모로는 총 844억달러 수준으로 지난해 이뤄진 연간 M&A 건수와 규모인 102건, 200억달러와 비교할 때 각각 2배와 4배가 넘는다. WSJ은 이 같은 현상은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기업이 늘어났고, 이와 비례해 벌처(Vulture) 투자가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올해만 해도 이런 방식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업체는 자동차 부품업체 델파이, 소매업체 에디바우어, 호텔체인 익스텐디드스테이아메리카 등 다양하다. 캘리포니아의 부동산업체 맥과이어도 최근 빚더미에 허덕이다 보유 중이던 빌딩 7채를 채권단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벌처 투자자들은 꼬박꼬박 원리금을 걷기 보다 채권자의 지위를 이용해 회사를 삼키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고 WSJ는 지적했다. 이는 흡사 주택을 압류할 목적으로 담보대출을 해주는 은행의 입장과 비슷하다. 벌처란 썩은 고기를 주식으로 삼는 대머리 독수리를 뜻한다. 벌처 투자자들도 대머리 독수리처럼 부실기업(썩은 고기)를 노린다. 정리하면 벌처 투자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기업 가운데 유망한 기업을 골라 돈을 빌려주고 채무상환을 종용해 결국 경영권을 넘겨받는 식의 투자를 말한다. 벌처투자를 앞세운 채권자들의 경영권 인수는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전망에 따르면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진 회사채 규모는 올해 1,450억달러에서 2010년 1,300억달러, 2011년에는 1,200억달러 등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권을 이용해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데 관심이 있는 은행들이 최근 벌처 투자 사업을 늘리고 있다"면서 "돈줄이 마른 기업 입장에서도 경영권을 넘기는 것이 빚을 갚는 최선의 방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월가 변호사들도 주식 인수 등을 통한 전통적인 M&A 관련 송사 보다 채권자들의 경영권 인수와 관련한 법적 자문을 맡아 고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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