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지난해 실적에 애써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다. 3년 연속 무역규모 1조달러 이상, 사상 최대의 수출과 무역수지 흑자를 두고 '트리플크라운(무역 3관왕)'이라고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실적에 안주하고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다가올 현실이 밝지 않다.
당장 내년 수출을 기약하기 어렵다. 막대한 흑자를 올릴 때마다 우리 경제는 환율절상과 통상 압력에 시달려왔다. 미국은 벌써부터 우리에게 시장 추가 개방 압력을 가하고 원·엔 환율 1,000원선도 무너져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날로 나빠지고 있다. 일본이 4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 이전까지 엔화약세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수출이 연초부터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도 수출호조보다는 수입부진에 의존한 것이어서 자칫 원자재 부족사태를 겪을 경우 대응수단도 마땅치 않다.
무역수지 흑자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 여부다. 꾸준한 흑자기조는 품질경쟁력에서 나온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770원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기업들의 비가격 경쟁력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기업의 기술개발·품질개선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현실적으로 동원 가능한 정책은 내수확대뿐이다. 원화가치는 올라가고 무역수지 흑자도 쌓이는데 내수까지 부진하다면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의 일본형 장기불황과 다름없다. 사상 최대 흑자라는 실적의 이면에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에 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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