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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친구를 만났다. 맞벌이를 하는 그 친구는 2년 전 대출을 받아 강남의 소형 재건축 아파트 두 채를 매입했다. 한 달 이자만도 150만원 가까이 부담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그 친구는 소득의 3분의1이상을 이자로 내야 하는 흔히 말하는 ‘하우스푸어’였다. 친구에게 이자 부담 때문에 힘들겠다고 하자 돌아오는 답변이 의외였다. 대출 당시보다 금리가 떨어져 오히려 이자 부담이 줄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자가 버겁지만 자신이 선택한 투자인 만큼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상당수 하우스푸어는 높은 이자 부담을 알고도 무리해 집을 산 사람들이다. 대출을 받을 당시에는 자신의 소득으로 충분히 이자를 부담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집을 샀을 것이고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이자를 한 방에 만회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집값이 떨어지면서 이자를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졌다. 상실감은 컸을 테지만 지금 당장 그들이 집값 하락으로 손해를 보는 일은 없다. 집값이 떨어진다고 해서 매달 납부해야 하는 이자가 오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에서 하우스푸어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트러스트앤리스백(신탁 후 재임대)’ 방식의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하지만 시행 한 달이 다 되도록 신청자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자신의 주택을 은행에 맡기는 방식에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출구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우스푸어’는 정치권과 여론의 바람몰이 때문에 부풀려진 측면이 크다.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추정 가구도 10만가구에서 200만가구까지 천차만별이다.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되면서 각 정당 후보들도 하우스푸어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실상 파악이 우선이다. 그리고 정말 심각하다면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전까지 ‘하우스푸어’는 실체 없는 추상적 표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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