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제83회 제네바 모터쇼에 모인 세계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강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 세르조 마르키온네 피아트 회장은 이번 모터쇼 현장에서 "자동차 업계를 살리는 데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조시트로엥 관계자는 "감원과 공장 폐쇄, 저개발국으로의 생산 이전에 반대하는 정부의 입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도 유럽 자동차 시장 전망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네바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앞으로 3~4년은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리스ㆍ스페인 등 남유럽 경제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더욱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수년간 유럽의 자동차 판매 감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유럽연합(EU)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을 더한 자동차 수요는 2007년 1,600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08년 1,470만대(-8.1%), 2009년 1,450만대(-1.4%)로 줄어들었고 2010년에는 1,515만대로 증가했다가 2011년 1,359만대(-10.4), 2012년 1,253만대(-7.8%)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2007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무려 21.7%가 감소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 시장의 기존 강자들은 체력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의 푸조시트로엥그룹, 르노그룹과 이탈리아 피아트그룹은 지난해 각각 12.9%, 18.9%, 15.8%의 판매 감소를 나타내며 구조조정에 매달리고 있다. 체력 소진은 유럽 업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기업인 GM과 포드도 지난해 각각 13% 이상 판매가 감소했고 일본 도요타와 닛산도 2.5%, 5.8%씩 판매가 줄었다. 이들 업체도 더 이상 유럽용 신차를 개발하고 유럽에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을 여력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다른 시장에 치중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장 환경이 한국 차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현대ㆍ기아차는 2008년 이후 내놓은 유럽 전략 차종을 모두 성공시키며 독보적인 성장을 하고 있어 유럽 맞춤형 신차 개발과 마케팅에 투자할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자동차 전문지의 한 기자는 "지난해는 폭스바겐그룹과 BMW마저도 판매가 줄어드는 최악의 환경에서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9.4%, 14.6% 성장한 데 세계가 놀라고 있다"면서 "기존 강자들이 비틀거릴 때 강한 마케팅을 구사한 역발상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현대ㆍ기아차의 한 관계자는 "유럽 차 시장의 내리막이 예상됨에 따라 앞으로는 판매 확대보다는 점유율 확대에 주력하는 전략을 구사하겠다"면서 "불황기에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고 향후 회복기에 본격적으로 유럽 시장을 리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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