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이 심상찮다. 크림반도를 둘러싼 갈등 탓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의 귀속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 결과가 압도적 찬성으로 나오자마자 인정못하겠다고 나섰다. 미국은 자산 동결과 금융거래 중단, 여행금지 등 대 러시아 추가 경제제재를 검토 중이다. 러시아에서는 보복 여론이 들끓는다. 냉전 종식 후 최악의 긴장 국면. 마주 보고 달리는 형국이다. 경제전쟁이 일어날 판이니 원자재가격이 뛸 수밖에.
△냉전 시절 두 초강대국의 전쟁을 막아준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핵무기다. 누가 공격해도 보복당하면 공멸하는 상황을 '상호확증파괴(MAD)'라고 불렀다. 서로 두려워하는 '공포의 균형'은 냉전 종식으로 잊혀져 가고 있으나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미친 짓'은 여전하다. 경제적 다툼의 소지는 더 높다. 경제제재에 맞서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송유관의 밸브를 잠그면 회복세의 세계경제도 휘청거릴 수 있다. 경제적 상호확증파괴의 전야다.
△장기적으로는 유가가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셰일가스로 여유가 생긴 미국의 가격결정권이 더욱 강해져 러시아의 배를 불려줄 고유가 상황의 지속을 용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합병증이 찾아오는 경우다. 크림반도의 경제 전운에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중국의 경기침체가 맞물린다면 신흥국들의 취약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원자재 가격과 외국인 자금 유출입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때다.
△우리네 아픈 역사는 서방과 러시아 간 '뉴 그레이트 게임'을 간과할 수 없게 만든다. 세계를 지배하는 영국에 러시아가 도전해 크림반도와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격돌했던 '원조 그레이트 게임'의 불통이 동북아시아로 튄 게 영국 동양함대의 거문도 점령 사건이다. 국력이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기에 역사의 반복성이 덜 두렵지만 경제적·정치적 상호확증파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삼성과 애플 간 특허전쟁이 그렇고 동북아 역사전쟁이 그렇다. 사방에 지뢰가 널렸다./권홍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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