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엄중한 경기상황에 견주어 반년 가까이 기준금리가 꿈쩍도 않는 것에 대해 쉽사리 수긍하기 어렵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다음달 발표되는 1ㆍ4분기 성장률이 지난해 4ㆍ4분기(0.4%)보다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총재 말마따나 경제가 미약하나마 회복세를 타고 있기는 하지만 회복이라고 보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지난해 2ㆍ4분기 이후 7분기 연속 성장률 0%대(전분기 대비)에 머물고 있다. 0%대 저성장이 8분기째 이어질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기준금리가 이번에도 동결되자 시장에서는 짐짓 정치적 해석까지 내놓는 모양이다. 새 정부의 경제팀이 온전히 짜인 뒤 경제정책 방향을 보고 통화정책을 맞출 것이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새 경제팀이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나 부동산시장 정상화대책을 내놓으면 그때 가서 금리를 인하해 경기부양책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런 분석을 얼토당토않은 억측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는 김 총재가 정부와의 정책공조를 유달리 강조한 데서 연유한다.
한은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내세워 정부 재정정책과 엇박자를 내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은이 정부에 끌려간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위상과 신뢰성 실추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정부가 추경 카드를 꺼내 든다면 통화정책은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된다. 정책공조를 그토록 강조했으니 금리를 내려 경기부양에 힘을 보태야 할 텐데 경기상황이 달라질 게 없다면 지난 5개월 동안 금리를 동결한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정책공조로 기왕의 정책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한은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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