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가가 다시 일본 자본에 손을 내밀고 있다. 미국이 지난 1980년대 재정 및 무역의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 엔화 자본을 대거 유치했던 현상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일본 은행들이 미래 성장동력을 해외 투자에서 찾으면서 최근 금융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는 미국 투자은행(IB) 등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21일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UFJ는 모건스탠리 지분 20%를 80억~9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미쓰비시UFJ는 모건스탠리 집행이사회에 이사 한 명을 파견하는 등 모건스탠리와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게 된다. 같은 날 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증권이 리먼브러더스 아시아법인을 2억2,500만달러에 인수한 데 이어 리먼의 유럽법인 인수도 유력시되고 있다. 이에 앞서 6월 일본의 2위 은행인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은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에 10억달러를 투자했으며 1월에는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이 메릴린치 우선주 매입에 12억달러를 투입했다. 이 같은 일본 금융권의 투자행보는 부실채권 문제로 정부에서 4,4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일본 은행들은 당시의 위기를 계기로 건전성을 회복했고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서구 은행 투자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일본사회의 고령화로 성장을 위해서는 해외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일본 금융권의 판단도 미국 금융기관 투자 붐을 유인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노무라증권의 이와사와 세이치로 이코노미스트는 “M&A가 호황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값을 주고 이뤄져 인수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금융산업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일본 금융권도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WSJ는 그러나 후지은행이 미국 금융회사인 헬러파이낸셜을 인수한 지 7년 만인 2001년 다시 제너럴일렉트릭(GE) 캐피털에 매각한 사실을 언급하며 일본이 현재의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WSJ는 또 최근 인수합병(M&A) 붐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들이 높은 수준의 프리미엄을 제공하는 점도 앞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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