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ㆍ러시아등 신흥시장(이머징마켓)의 주가가 급락해 바겐세일의 기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치솟고 성장이 둔화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머징마켓의 성장 잠재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것. 신흥시장의 주가가 올들어 급락한 사실도 조만간 세계 경제가 상승세로 돌아설 경우 장기 투자자들에겐 이머징 마켓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삼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분석이다. 올들어 탈동조화(디커플링) 이론이 붕괴되고, 신흥시장 주가가 선진국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연초대비 56%가 넘게 폭락하고, 러시아ㆍ인도 주식시장은 27% 하락했다. 브라질마저 6월 이후 13%의 낙폭을 보였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이머징 마켓에서 빠져나가는 엑소더스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신흥시장으로 전염된 것이다. 아직도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미국과 유로존 경제가 퇴조하면서 신흥 시장에 더 큰 고통을 줄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ㆍ유럽의 경기 침체 우려가 높아지고, 물가 급등까지 겹치면서 신흥시장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의 물가 상승률은 올해 4.8%에서 내년에는 6.8%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브라질은 3.6%에서 5.3%로, 인도는 6.4%에서 8.4%로, 러시아는 9%에서 14.6%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HSBC는 신흥시장에서의 물가 앙등이 주로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기인하지만, 산업 규모 자체가 적은 것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브릭스(BRICs) 국가 중에서는 중국만이 충분한 경제 규모를 갖췄을 뿐이다. HSBC 신흥시장연구소의 필립 풀 글로벌 팀장은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한 것이 생산 단가를 높이는 원인"이라며 "많은 신흥시장에서 성장을 뒷받침할 만큼 투자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 신흥시장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할 것인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각종 부정적인 시그널에도 불구하고 신흥 시장의 기초 체력(펀더멘털)은 여전히 믿을만하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신흥시장의 증시가 올들어 서구 시장에 비해 급락하면서 장기적인 성장을 믿는 투자자들에겐 지금이 바겐세일 기회가 될 수 있다. 도이체방크의 달링 애리번 이머징마켓 헤드는 "2015년이 되면 신흥시장은 세계 경제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며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부(富)가 이동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시장의 장기전만을 밝게 보는 사람들은 먼저 펀더멘털이 든든하다는 점을 든다. 대외 부채나 통화 관리, 재정 정책 수립 등에서 신흥 금융 시장의 체력이 1990년대 위기 이후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브릭스 4국의 중앙은행들은 외국으로부터 돈을 거의 빌리지 않았기 때문에 서구의 신용 위기에 따른 위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중국의 은행 대외 차입은 국내총생산(GDP)의 2%에 불과하고 인도는 4%, 브라질과 러시아는 13%에 그치고 있다. 또 금을 제외한 보유외환은 중국이 1조9,000억 달러에 이르고, 인도는 3,300억달러, 브라질은 2,050억달러에 달한다. 러시아 외환보유액도 그루지야 사태에 따른 서방의 투자회수에도 불구하고 올 연말까지 5,000억 달러가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보다 낮아지긴 했지만 중국은 올해 9.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브라질은 3.8%, 러시아는 7%, 인도는 7.7%의 성장이 예상된다. 이 같은 성장률은 서구를 월등히 앞서며, 경제 경착륙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장기적인 성장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게다가 브라질과 러시아는 땅속에 엄청난 자원이 묻혀 있다. 러시아는 매일 10억 달러 이상의 원유를 캐내고 있고 브라질은 옥수수와 밀, 설탕, 석유의 주요 생산국이다. 또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대부분 국가들은 자원이 풍부하고 경제 성장을 가로막았던 정치도 안정을 찾고 있다. 상품 가격이 고점에서 20% 하락한데 이어 추가 하락 가능성도 높아지면서 인플레이션 암운도 걷히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자원부국의 성장 잠재력이 잠식당할 수도 있지만, 애널리스트들은 러시아 같은 경우는 유가가 100달러까지 떨어져도 여전히 남는 장사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몇몇 신흥 국가는 서구 신용 위기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외국에서 돈을 빌려 자산에 지나치게 투자한 결과 대외 부채가 GDP의 71.4%에 달하고 있으며 멕시코는 대미 수출 비중이 85%에 이른다. 동구권 국가들은 유로존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고 재정 적자에도 시달리고 있다. 개별 신흥국가에 대한 전망은 정치상황, 내수 경제 등에 따라 달라진다. 동구권과 러시아엔 향후 몇 달 간은 험난한 시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크레디스위스의 애널리스트 블라디미르 사보프는 "최근의 위기는 단기적인 문제일 뿐으로 러시아의 펀더멘털은 변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흥 경제가 서구에 비해 나은 성과를 달성할 것이라고 예측할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분석한다. RBC캐피탈의 니겔 런들은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신흥 경제의 체력은 상태가 좋다"면서 "미국과 유로존에 비해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이후 신흥시장은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IMF는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신흥시장이 세계 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50%에 미치지 못했지만 올해에는 80%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흥 경제권의 총생산 규모는 올해 18조1,000억 달러로 세계 경제의 30%에 이르고 있으며 2013년까지 비중이 35%까지 증가해 28조8,5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IMF는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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