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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10월 26일] 병역의무의 경제학
입력2009-10-25 18:46:34
수정
2009.10.25 18:46:34
불법적인 병역기피 사건이 해마다 적발되고 그때마다 관련자들의 대량구속은 물론 당국의 처벌강화와 제도개선 등의 대책이 발표되기는 하지만 근절은커녕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을 뿐이다.
시중에는 자식이 군대에 가는지 여부가 부모 능력에 달렸다는 웃지 못할 풍자가 회자되곤 한다. 부모에게 권력이 있거나 돈이 많으면 자식이 군대에 가지 않는 세태를 꼬집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병역비리는 역사적으로 봐도 오래됐다. 조선시대에 병역은 오로지 일반백성의 몫이었다. 양반은 무과에 급제해 벼슬살이를 했을 뿐 병역의무에서는 면제됐다. 임진왜란ㆍ병자호란 때 육지와 바다에서 목숨을 바친 병졸들은 농민이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대기업 총수 자녀들을 전방으로 배치하고 특별 관리한 적도 있었다.
한국사회가 민주화되고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공직자들의 병역의무 준수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강해졌고 선거나 인사청문회 때마다 단골 메뉴가 됐다. 아들의 병역논란 때문에 대권을 놓치는 일이 생길 정도로 병역비리는 부동산투기와 더불어 고위공직자들의 금기 사항이 됐고 그만큼 정화돼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역에서 복무하는 사병들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굳건한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모든 젊은이가 공평하게 병역의무를 짊어진다고는 보기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다. 불법적 기피 이외에도 국가가 앞장서 합법적이지만 불공평하게 보이는 병역면제의 범위를 점점 넓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공익근무ㆍ산업기능요원ㆍ체육유공자 등 병역에서 제외되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정작 군대에 가는 젊은이들은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가에 기여하는 바가 별로 없는 젊은이만 군대에 간다는 자조적인 말도 나온다.
병역의무는 경제이론에 나오는 외부 경제효과의 단적인 예다. 개개인에게는 별다른 이익을 주지 않고 비용만 초래하는 반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큰 이익을 안겨주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그냥 시장에 맡기면 심각한 공급 부족이 생긴다. 국가가 강제하지 않더라도 군대가 좋아서 또는 공짜로 밥을 먹여 주니까 자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굳이 시장 메커니즘으로 해결하자면 모병제 국가에서 하는 것처럼 다른 직업과 경쟁할 만한 봉급을 줘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재정형편상 불가능한 해법이다.
최근 사병들의 봉급을 올리고 내무반을 개선해 개인침상을 마련해주고 사회에서 필요한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등의 조치는 외부 경제효과를 줄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물론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 역할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국민은 사회에서 인정받는 반면 그렇지 않은 국민은 사회에서 기피하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다. 공직자는 물론 일반인의 경우에도 복무 의무를 마치지 않은 자는 취업은 물론 심지어는 결혼 상대로도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가꿔나가야 한다. 그래서 지금처럼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군대에 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인 제안을 하자면 신체검사 기준을 단순화해 누구라도 현역복무를 하게 해야 한다. 지금은 최첨단 검사장비로 정밀 검사해 신체검사 합격자를 가려내므로 멀쩡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젊은이들조차 면제판정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대의 군대는 기술ㆍ지식집약적으로 변모하고 있으므로 각자의 신체적 특성에 맞는 병과와 보직을 주면 거의 모든 젊은이가 군복무를 정상적으로 마칠 수 있다.
현역 면제판정을 받은 자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결혼생활을 하기에도 부적합한 건강상태라는 낙인이 찍히게 해야 한다. 신체검사 기준도 일종의 행정규제인데 규제가 심할수록 부패도 심해지는 것이 경제원리이다. 그러므로 신검기준은 단순하고 명료하게 해야 부정이 발붙일 소지가 줄어들고 지금처럼 군대에 가는 착한 젊은이가 오히려 무능하고 요령 없는 사람으로 치부 받는 모순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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