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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버스는 탄자니아 아루샤주의 주도(州都)인 아루샤를 출발,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을 향해 북서쪽으로 80㎞를 달렸다.
버스가 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견딜 만했지만 일단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자 온몸이 피스톤처럼 상하운동을 했다. 머리는 버스천장에 무시로 부딪혔다.
그래도 비포장도로는 견딜 만했다. 하지만 앞서 가는 차가 달리면서 뿜어내는 붉은 색 진흙먼지는 악몽이었다. 목이 칼칼해져 마스크를 했더니 금세 마스크 콧구멍 부위에 진흙 빛 먼지가 빨갛게 들러붙었다.
응고롱고로 와일드라이프 롯지로 들어가서 10분쯤 달렸을까. 앞서 가던 지프가 갑자기 멈춰섰다. 옆으로 붙어 정차한 이유를 물었더니 "차 앞으로 표범이 지나갔다"고 한다. 표범은 워낙 행동이 조심스러워 동물의 낙원인 이곳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맹수다.
롯지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오전6시 사파리투어용으로 개조한 사륜구동차를 타고 분화구 안으로 들어갔다.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자 세계 최대 분화구인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30배에 달한다. 2만6,400㏊의 엄청난 분화구 바닥은 각종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응고롱고로는 탄자니아의 마사이어로 '큰 구멍'이라는 뜻인데 남북으로 16㎞, 동서 길이는 19㎞에 달한다. 특히 분화구 밑으로 내려가면 표고는 600m나 낮아진다. 바닥의 '마카투' 호수는 뭍 동물의 생명수 역할을 하고 있다.
분화구에 들어서자 멀리에 누와 가젤 영양 몇 마리가 보였다. 망원렌즈를 최대한 당겨 기관단총 쏘아대듯 연속 촬영으로 미친 듯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이 같은 흥분이 쓸데없는 정력 소모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1~2km 정도 더 갔을까. 이제는 곳곳에 누와 영양ㆍ멧돼지ㆍ얼룩말이 자동차 앞까지 다가와 풀을 뜯었다. 망원렌즈를 사용할 필요도, 연속촬영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천천히 코 앞에 있는 동물을, 기호에 따라 골라서 촬영하기만 하면 됐다. 마치 대형마트에 가서 진열대에 놓인 물건을 고르듯 어슬렁거리는 동물을 찾아 셔터만 누르면 그뿐이었다.
세렌게티 동쪽 평원 위에 솟아 있는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화산성 단층지괴(斷層地塊ㆍmassif)로 중생대 후기와 제3기(Tertiary) 초기에 형성됐다.
가장자리의 높이는 바닥에서부터 400~610m 사이로 분화구와 고원들은 그레고리 지구대(Gregory Rift Valley) 서쪽에서 일어난 대규모 융기 현상(massive rifting)과 더불어 형성된 산물이다.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의 기후와 고도는 다양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동물들이 살고 있는 몇 개의 서식지가 형성돼 있다. 가파른 산비탈은 관목 히스(heath)와 빽빽한 산지 삼림으로 뒤덮여 있고 분화구 바닥에는 평원과 호수ㆍ늪 주변에는 아카시아 숲이 어우러져 있다.
분화구 안에는 발굽이 있는 포유동물인 유제류(ungulate)만 약 2만 마리가 살고 있는데 이들을 먹잇감으로 하는 포식자인 사자도 함께 서식하고 있다.
다만 기린은 이곳에 살고 있지 않다고 하는데 일행 중 앞서가는 차량에 탄 이들은 먼 발치에서 기린 한 마리를 보았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얼마쯤 더 갔을까. 덤불 숲 속으로 아프리카 코끼리의 몸 일부가 보였다. 두 마리였는데 암수인지 서로 코를 비비고 있었다. 코끼리들은 사람들을 자주 보아서인지 가까이에 지프가 멈춰서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사랑놀음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사진 30~40컷을 찍고 나서 지프가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먼발치로 물소 떼가 보였지만 거리가 있어 잘 보이지 않아 다시 출발했다.
2㎞쯤 전진하자 사륜구동차 한 무리가 모여 있었다. 우리 차의 왼쪽을 보니 300~400m 전방에 7~8마리의 사자 무리가 우리 쪽을 향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사자들은 차 범퍼에서 불과 1m 앞으로 지나쳐 차도를 건너갔다. 하지만 차와 인간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 사자들의 신경은 온통 길 오른편에 있는 영양과 누ㆍ얼룩말에만 집중돼 있었다.
길을 건넌 사자들은 일제히 배를 바닥에 깔고 엎드려 낮은 포복 자세를 취했다. 한 번 도약으로 먹잇감 사냥이 가능한 사정권 안으로 접근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사냥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사자들은 미동도 않고 전방만 주시했다. 오히려 지루해진 구경꾼 사람들이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날 때마다 사자들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하라"고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는 듯했다.
사자들은 자세를 낮춘 지 30분이 지나도 움직임이 없었다. 운전을 하던 가이드가 "사자들은 첫 번 사냥 시도에서 실패할 경우 두 번째 시도의 성공확률이 20% 아래로 낮아진다"고 말했다. 7~8마리가 동업을 해서 4~5번 시도해야 한 마리 잡아 나눠 먹는 셈이니 사자들도 먹고 살기는 사람 못지 않게 힘든 셈이다. 첫 번째 사냥 시도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사자들이 사냥에 뜸을 들이는 이유를 알게 되자 무작정 기다릴 수 만도 없어 다음 스케줄을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지프가 움직이자 사자들은 누런 점으로 점점 작아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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