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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이 7년 만에 가장 평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폭풍의 전조'라는 경고가 주요국 중앙은행 당국자들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선진국의 천문학적 돈 풀기로 투자가들이 주식과 부동산, 남유럽 채권 등 고위험 자산에 몰리고 있지만 중앙은행들의 출구전략으로 기준금리가 오르면 순식간에 태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나 중국 경착륙 가능성이 금융 대혼란을 촉발할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우려다.
◇"2007년 금융위기 전야처럼 으스스한 분위기"=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불과 하루 만에 미국과 영국·독일 등 선진국 중앙은행 고위당국자들이 최근 시장의 고요가 장차 금융혼란을 부르고 통화정책 수행을 더 복잡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주식·통화·상품·채권 등의 변동성을 나타내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시장위험지수는 지난 14일 현재 -1.22까지 떨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의 조짐이 나타났던 2007년 6월 이후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린 가운데 시장 변동성도 크게 떨어지면서 투자가들이 마음 놓고 고위험 투자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실제 스페인·아일랜드 등의 국채 가격은 기록적인 수준으로 떨어졌고 영국·노르웨이 등의 부동산 가격도 급등 추세다.
이 때문에 조만간 거품붕괴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다음달 퇴임하는 찰스 빈 영국 중앙은행(BOE) 부총재는 20일 "투자가들이 자기만족에 빠져 시장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금융위기 이전의 섬뜩한 분위기를 연상시킨다"고 경고했다. 금융위기 전 20년간에 걸친 '대안정기(Great Moderation)'의 전례를 봐도 변동성 하락은 반드시 은행 붕괴 등 자기 파괴의 씨앗을 뿌렸다는 것이다. 그는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정상화로 시장 금리가 오르고 변동성이 커지면 위험자산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며 "특히 우크라이나 위기나 중국 경제 둔화는 금융혼란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만간 시한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경고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도 나오고 있다. 매파 인사인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인플레이션 압력이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면서 연준이 금리를 (계획보다) 더 빠르고 급하게 인상해야 할지 모른다"며 "(전례 없이 엄청난 자금이 풀려 있어) 충격도 이전보다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안드레아스 돔브레트 집행이사도 "겉으로 평온한 시장에 새로운 위험요소가 보인다"며 "일부 유럽국의 부동산 가격 급등, 회사채 고평가 등의 위기요인에도 투자가들은 리스크 헤징조차 줄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가시권 들어선 중앙은행 출구전략=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초저금리의 부작용이 커지면서 중앙은행들은 출구전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BOE는 21일 공개한 4월 통화정책 회의록에서 "조기 금리인상 신중론이 여전히 중론이지만 일부 참석자는 통화정책이 더 균형된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BOE가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 가운데 처음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여름부터 BOE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인상에 찬성하는 '반란표'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 연준도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초저금리 정책을 마무리하고 이를 대체할 수단을 처음 논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공개된 회의록에 따르면 위원들은 신중하게 향후 계획을 세운다는 차원에서 금리인상의 몇 가지 접근법을 논의했다. 연준이 이른바 출구전략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물론 연준과 BOE는 시장 혼란 등을 우려해 상당기간 초저금리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연준의 경우 내년 하반기에나 첫 금리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유럽중앙은행(ECB)은 다음달 5일 회의에서 주요 중앙은행으로서는 처음으로 마이너스 예치금리를 채택하는 등 추가 완화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통화정책 정상화가 늦어질수록 후폭풍도 거세진다는 게 각국 중앙은행의 딜레마다. 런던 소재 G플러스이코노믹스의 레나 코밀레바 대표는 "각국 중앙은행들은 경기부양책을 유지하면서도 과도한 고위험 투자를 막아야 하는 복잡한 처지"라며 "막대한 유동성이 금융시장에 몰리면서 실물경제에는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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