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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을 둘러싼 과도한 규제도 깨야 하겠지만 불건전한 업계의 영업 관행 역시 깨부숴야 합니다.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고 자본시장의 역량을 강화해야만 금융산업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지난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황영기(사진)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은 금융산업, 특히 증권과 자산운용업계에서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이파삼립(二破三立)'이라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2월 금융산업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파불립(不破不立·낡은 것을 부수지 않으면 새것을 세울 수 없다)'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은행의 경우 갈수록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핀테크'라는 새로운 도전자를 앞에 두고 있고 보험업계에는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적용이라는 태풍이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가가 오르고 지난해 실시한 구조조정 덕분에 사정이 약간 나아지고는 있지만 증권이나 자산운용업도 역시 위기 국면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파삼립은 불파불립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다. 타파해야 할 두 가지는 업계의 불건전 영업 관행과 정부의 과도한 규제다. 그리고 고객 신뢰와 자산운용 역량, 그리고 이를 통해 국민 행복을 창출하는 산업으로서의 위상 등 세 가지를 새로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규제 완화도 병행해야 하지만 우리 업계도 스스로 먼저 반성하고 자정노력을 통해 잃어버린 고객들의 신뢰를 우선 되돌려 놓아야 한다"며 "동시에 자산운용사들의 역량을 강화해 보다 높은 수익을 고객들에게 돌려주게 되면 자본시장이 인정받아 바로 설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금융투자협회장으로 취임한 지 두 달 남짓, 황 회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회원사, 금융당국, 국회 관계자 등을 쉴 새 없이 만나고 있다. 이 때문에 협회 임직원들은 너무 바빠 업무보고를 할 시간조차 없다고 불만 아닌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런 노력으로 업계가 요구하는 것들은 이미 당국에 모두 전달했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초를 거치면서 자본시장을 둘러싼 규제의 상당 부분은 개선됐다고 자평했다.
그래서 이제는 더 큰 틀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그는 강조했다. 황 회장의 시선이 머문 곳은 자본시장통합법이다. 그는 현행 자통법이 너무 규제 중심으로 변형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처음에는 달랐다는 얘기다. 애초 2009년부터 시행된 자통법은 제정 당시 '네거티브(negative) 규제'와 '프린시펄 베이스드(principal based) 감독 방식'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자율성과 다양성·창조성을 핵심으로 한 자본시장법은 각종 규제가 덧붙여지면서 '포지티브(positive) 규제'와 '룰 베이스드(rule based) 감독 방식'으로 변형됐다.
네거티브 방식은 원칙은 허용하되 예외는 금지하는 방식, 즉 금지된 항목 이외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허용한다. 반면 포지티브 방식은 원칙은 금지하되 예외만 허용하는 방식이어서 법에 기재된 것 외에는 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다. 또 황 회장이 언급한 '프린시펄 베이스드 감독 방식'은 원칙만 제시하고 이에 부합되는 행위는 모두 허용하는 감독 방식인 데 비해 룰 베이스드 방식은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프린시펄 베이스드 방식은 야구팀 감독이 선수에게 '경기 전날 몸상태를 최고로 만들어놓을 것'이라는 원칙만 알려주고 이를 실천하는 다양한 방법은 선수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맡긴다. 하지만 룰 베이스드 방식은 '몸상태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탄산음료를 마시지 말고 식단을 조절하라'는 식으로 선수의 행동 하나하나를 강제하는 것이다. 황 회장은 "자통법의 정신은 영국과 미국·호주의 법체계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뒤 국내에서 자본시장의 위험이 지적돼 수많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덧붙여지면서 상당 부분 왜곡됐다"며 "업계가 초심으로 돌아가서 스스로 잘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애초의 영미 방식의 법체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업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 '금융상품에 대한 과세제도'도 손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장기보유에 대한 세제혜택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후생활설계가 중산층의 큰 과제인 만큼 적어도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자산에 대해서는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펀드 장기보유를 유도하는 세제지원을 해야 한다"며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인 'ISA·IWA'를 좀 더 여유롭게 설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영국과 일본 등에서 시행 중인 ISA·IWA는 특정 계좌를 통해 펀드나 예금 등 금융상품에 일정 금액을 투자했을 때 발생하는 배당이나 소득에 대해 면세혜택을 주는 제도다. 시행하는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영국의 경우 주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소득제한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목적으로 도입해 나이제한만 있을 뿐 소득에 따른 제한이 없다. 황 회장은 ISA·IWA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일본처럼 가입자격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연소득 1억원이든 1억5,000만원이든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가입 기준을 만드는 것도 괜찮겠지만 가능하면 일본처럼 가입제한은 없는 것이 좋겠다"며 "우리 경제를 위해서는 저소득층도 중요하지만 중산층도 함께 두터워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근본적인 펀드 과세체계의 개편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종합적인 세제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내 간접투자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는데 세제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4년 말 국내 펀드 순자산 규모는 190조원이었지만 지난해 말에는 376조원으로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상품과 관련한 세제는 여전히 국내 펀드와 해외 펀드 과세 기준이 다르고 손실에 대한 과세로 조세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등 허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세금 때문에 투자 쏠림현상이 발생하고 더 높은 리스크가 발생하는 것은 문제"라며 "간접투자 규모에 걸맞게 세제를 간단하게 해 국내외 투자상품에 대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현재 증권·자산운용업체 수가 너무 많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인정하지만 정부의 개입이 있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시장 기능에 따라 점진적으로 정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증권회사 수는 현재 59개. 지난해 활발한 인수합병을 거쳐 전년보다 3개 줄었다. 자산운용사는 80개가 넘는 업체들이 뒤섞여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물론 '적정 규모'를 규정할 수는 없지만 차별화·특화 정도가 미흡한 '중간형 플레이어'가 너무 많다는 것은 업계의 고민이다. 황 회장은 "투자자들이 좋아하는 판매사와 운용사는 손님이 몰려오고 그렇지 않은 곳은 서서히 규모가 줄어들거나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와 2000년대 정부의 규제 완화에 따라 시장 스스로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일어난 적이 있고 이때 메릴린치와 JP모건·시티그룹 등이 크게 성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협회 차원에서 중소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우선 운용사나 증권사의 비(非)핵심업무를 담당하는 '경영서비스회사' 또는 '셰어드 매니지먼트 서비스(shared management service)' 업체를 만들어 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운용사를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증권사도 연합증권회사를 만들어 인사·재무 등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자신들의 업무 특성에 따른 영업을 진행하면서 이익은 분배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는 "협회가 주도적으로 이런 것을 도입해서 하자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업체들의 요구가 있다면 적극 지원할 수 있고 일본과 미국에서도 중소업체들을 중심으로 이런 사례들이 있다"고 말했다.
He is… |
"청년들이여 'Why me?'에 답할 준비를 하라 도전에 앞서 필요한 일을 독하게 준비해 |
사진=이호재기자
대담=이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