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살해한 고교생에게 ‘심신미약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인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가 선고된 데 대해 검찰이 ‘너무 가벼운 처벌’이라며 항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과 원칙에 따른 조치이냐, 아니면 너무 도식에만 얽매인 대응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A(17)군에 대한 지난달 22일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사회봉사 120시간이 선고되자 단기 5년, 장기 7년의 징역형을 구형했던 검찰은 양형부당을 들어 항소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A군은 지난해 8월 16일 저녁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린 사실을 전해 들은 상태에서 다음 날 오전 4시 30분께 집 거실에서 어머니와 심하게 부부싸움을 벌인 뒤 잠든 아버지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모습을 처음 목격하고 큰 충격에 빠진 뒤 우울감과 불안감에 시달려 왔는데 이후에도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이 끊이지 않자 자신이 말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교 1학년 때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정황을 고려해 “두려움으로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순간적이고 우발적 충동으로 저지른 범행”이라며 “이 사건 범행을 단순히 패륜이라는 결과적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고 조속한 사회복귀를 통해 학업에 정진하게 함으로써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하는 것이 실형 복역보다 피고인의 장래와 사회 공동 이익을 위해 합리적일 것”이라고 집행유예 이유를 설명했다.
배심원 7명도 만장일치로 심신미약을 인정했으며 양형에 있어서도 집행유예 의견이 4명으로 실형 의견보다 많았다.
A군 사정이 알려지자 대전의 한 청소년상담위원은 학교를 그만둔 A군이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검정고시 학원비 등을 지원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검찰이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며 항소한 것을 두고 ‘너무 비정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심 변론을 맡았던 임성문 변호사는 “가정과 사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A군의 피폐해진 마음을 치료해 조속히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살인죄를 저질렀으니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도식적인 논리로 항소한 것이 공익의 수호자로서 검찰이 취할 옳은 행동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 청소년보호단체 관계자도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처벌에 앞서 방치된 청소년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더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균택 대전지검 차장검사는 “1심 양형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었다고 충분히 인정되지만 아버지를 살해한 중대 범죄에 대해 너무 감정에만 치우친 판단이 내려졌다고 본다”며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한 살인죄를 처벌함에 있어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항소이유를 설명했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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