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ㆍ홍련은 몰라도 '소피아'는 꿰고 있는 딸, 해적질을 '제이크'의 놀이쯤으로 여기는 아들, '해리 포터'로 영어를 배우면서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 '엘사'를 만나러 노르웨이 여행을 꿈꾸는 아저씨 등이 주위에는 많다. 몸은 한국에 살지만 마음은 외국에,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할리우드식 환상에 젖은 사람들이다. '그러면 어때'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이야기와 문화가 사라지고 할리우드 것만 남는다면 어떻게 될까. 문화융성을 국정과제로 삼은 터에 우리 문화를 잃고 '한국'은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이야기(스토리) 전쟁의 시대다. 누가 더 많은 이야기 자원을 확보하고 이를 재미있게 가공해 활용하느냐에 한 기업, 나아가 국가의 경제 미래가 좌우되는 시대다. 혁신 아이콘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스토리에 매료돼 아이폰을 사고 007영화 주인공 기분을 내며 BMW를 타는 등 이미 기존의 글로벌 산업 생태계가 이야기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어떻게 이야기를 입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서비스ㆍ제조업의 흥망도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업구조가 바뀌고 있다. 고임금과 기술혁신의 한계로 제조업 부문의 경쟁력이 하락한 선진국들이 문화산업에 베팅하고 이야기에 승부를 걸고 있다. 미국은 자국 상품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입혀 판매하고 세계는 그에 중독되고 있다.
이야기가 혁신이고 바로 창조경제를 움직이는 심장이다. 이야기산업 진흥을 위해 우리 정부와 업계가 적극 나서야 한다. 5,000년 역사의 우리나라에 소재나 아이디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아이디어가 이야기로 잘 엮여 문화 콘텐츠가 되고 또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느냐다. 이야기의 산업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이야기산업 진흥법' 제정과 함께 창작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등 경쟁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창작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문화식민지로 전락할지 주도국이 될지의 갈림길이다. 이야기 생태계 구축에 창조경제, 나아가 한국호의 성패가 걸려 있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이야기산업에 대한 개념규정부터 육성방안까지 포괄하는 종합계획이 필요하다"며 "이야기를 만들고 관리·유통까지 거시적 안목에서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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