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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인터넷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1974년. 백남준(1932~2006)은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와 함께 'W3(World Wide Web)'이라는 단어를 제시했다. 당시 록펠러재단에 이 같은 제안서를 낸 백남준은 일찍이 현대사회의 웹문화와 대중매체를 예견한 것.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터넷이 실제 발명된 것은 15년 후인 1989년의 일이고 90년대에 접어들어 상용화됐다. 시대를 앞선 백남준의 아이디어는 1994년에야 실현됐다. 기술이 그의 생각을 따라잡기까지 간극은 20년이었다. 백남준과 현대미술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이 작품이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 걸렸다.
64개의 모니터가 X자를 이루며 교차돼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다. 유전자의 나선형 구조처럼 꼬인 이들 역동적인 모니터는 순간순간 화면을 바꾸며 관객을 집중시킨다. 전시장에는 백남준이 평소 "신들린 무당의 굿판같다"고 했던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을 주인공으로 한 '샬롯', 동양사상을 유럽에 전파했다는 점에서 백남준이 존경했던 '톨스토이', 기억을 자극해 시간여행으로 안내하는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 등 일종의 로봇 형태로 제작한 비디오 조각도 설치됐다.
올해는 백남준의 미술시장 내 위상을 비롯해 미술사적 가치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작품가까지 재평가받는 전환점의 시기가 될 듯하다. 제프 쿤스·무라카미 다카시 등 현대미술의 '핫'한 작가를 키우고 파블로 피카소·장 미셸 바스키아·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거장만을 거래해 온 세계 정상급 화랑인 가고시안 갤러리가 지난해 10월 전격적으로 백남준 마케팅에 돌입했다. 백남준의 법적 대리인인 조카 켄 백 하쿠다와 전시·출판·저작권 관리의 계약을 맺은 것. 앞서 지난해에는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이 대규모 백남준 전시를 열었고, 영국 국립의 테이트미술관이 백남준의 작품 9점을 처음 구매해 지난해 11월 이숙경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테이트 모던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가고시안이 손 댄 이상 가격 상승은 예견된 일"이라고 분석하며 가고시안이 내년으로 예정한 작가의 10주기 전시가 가격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이번 학고재 전시 출품작 12점의 총액은 채 30억원이 되지 않는다. 제프 쿤스가 경매 최고가 370억원의 기록을 가진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의 첫 개인전을 연 백남준은 정보전달매체에 불과했던 텔레비전을 예술품으로 변모시킴으로써 미술의 새 지평을 열었고 음악의 시각화 등 장르 초월적 작품을 내놓으며 기존에 없던 것을 시도했다. 주관적 해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인상파, 다시점으로 화면을 구성한 피카소 등이 '비싼' 이유가 '새로운 지평'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향후 백남준의 가치 상승 여력은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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