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은 지난해 12월 초 퇴직연금가입자의 수급권을 보호하고 퇴직연금시장의 건전한 성장을 도모한다는 목적 아래 퇴직연금감독규정을 개정한 후 시행에 들어갔다. 이중 퇴직연금 관계자들의 주목을 끌었던 부분은 퇴직연금 신탁계약 내 자사상품 편입에 대한 단계적 규제강화 방침으로 감독당국은 당시 70%이던 자사상품 편입비율 한도를 2013년 4월1일부터 50%로 하향 조정하고 이후 추가적인 축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통합운용 신탁 기본원칙 위배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퇴직연금 신탁계약 내 자사상품 편입 문제란 무엇일까. 2005년 도입된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재직기간 동안 쌓은 적립금을 퇴직 후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수급권 보호를 위해 자산관리계약의 형태를 '퇴직연금 보험계약'과 '퇴직연금 신탁계약'으로 운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퇴직연금 보험계약은 보험회사의 일반계정과 분리된 특별계정에서 운용되는 보험계약을 의미하고 퇴직연금 신탁계약은 은행이나 증권회사 등 신탁회사가 고유계정과는 분리된 신탁계정에서 운용하는 특정금전신탁을 뜻한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쉽게 한마디로 풀어 쓰자면 '퇴직연금사업자는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를 위해 기업으로부터 위탁 받아 관리하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별도의 주머니로 관리하라'는 것이다.
당초 보험계약과 신탁계약으로 운용하도록 한 것은 이들 두 가지 형태의 계약이 근로자의 퇴직금 수급권을 보호하기에 가장 적합한 제도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대다수 국가에서도 퇴직연금 자산관리계약은 신탁은행이나 보험회사에만 인가를 내준 후 보험계약과 신탁계약을 통해 일반계정 또는 고유계정과 엄격하게 분리해 운영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퇴직연금 시행 이전 신탁자산 운용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자본시장법 시행령(구 신탁업감독규정)이 갑작스레 개정돼 퇴직연금 신탁계약에 있어 자사상품 운용이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신탁계약 자금이 신탁회사의 고유계정 상품에 흘러 들어가 운용되는 여타 국가에서 유래가 없는 모습을 띄게 됐다. 누군가가 금융기관에 신탁을 설정해 돈을 맡기면 금융기관이 그 돈을 일반 자금과 구분해 별도의 주머니로 운용하는 것이 신탁의 기본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제도시행 직전 급작스레 추진된 관련규정 개정은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지적을 받아왔다. 퇴직연금제도 도입의 가장 큰 목적인 근로자 수급권 보호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존재하게 됐기 때문이다.
시장질서 확립 차원 완전 분리해야
어찌됐든 신탁의 기본원칙이 훼손될 수 있는 퇴직연금 신탁계약 내 자사상품 편입 허용 문제에 대해 2011년 이후 금융감독당국이 뒤늦게나마 단계적 제한 조치에 나선 점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금융감독당국에서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따른 시장충격 등을 감안해 2011년 1단계 70% 조치, 금년 4월부터 2단계 50% 조치를 시행한 바 이제는 최종적으로 퇴직연금 신탁계약 내 자사상품 편입을 전면 금지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퇴직연금제도는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정부가 적극 추진한 준공적사회보장제도로서 근로자 퇴직 이후의 안정적 수급권 확보가 필수적이다. 금융감독당국이 퇴직연금감독규정의 개정 목적으로 밝힌 건전한 시장질서 확립을 달성하기 위해 이제는 신탁의 기본원칙에 위배되는 예외규정에서 비롯된 문제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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