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의 달콤한 향내음 뒤에 숨겨진 독을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와 사기 발행 의혹이 일고 있는 기업어음(CP)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지난 1999년 대우채 환매 사태와 저축은행 후순위채에 이어 STXㆍ웅진그룹 법정관리 사건을 겪었으면서도, ‘고금리=고위험’이라는 학습효과가 우리 국민 사이에 도무지 생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동양만 해도 연 7~8%의 고수익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대부분이다. 높은 이자는 꼬박꼬박 챙기다가 투자실패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가 여전한 것이다.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실은 보상받는 게 맞지만 일부 고객의 도덕적 해이에 가장 기본적인 경제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2일 “CP의 불완전 판매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당국의 책임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사기에 가까운 명백한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투자실패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동양의 경우 3~6개월 단위로 만기가 될 때마다 계속 재연장을 한 사람이 적지 않아 재판으로 가도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금리가 높다는 것은 망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말”이라며 “안타까운 사연도 많겠지만 높은 이자를 받으려면 그만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기본원리를 잊고 있는 것같다”고 덧붙였다.
고금리의 역습에 투자자들이 당했던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다. 대우 사태 때 대우가 발행했던 회사채와 CP는 무려 30조7,000억원에 달했다. 정부가 부분 보전해줬지만, 투자 상품의 손실 가능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당장 두 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6월 STX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상당수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았다. STX의 팬오션 신용등급이 ‘BBB’에 불과했지만 연 6~7%의 고금리를 보고 뛰어든 개인이 많았다. 웅진 사태 때도 수많은 개미들이 손실을 봤고 연 8%대 전후의 고금리 저축은행 후순위채를 샀다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그런데 동양 때도 똑같은 일이 생겼다. 시장에서는 몇 년 전부터 동양의 자금사정이 안 좋다는 것이 기정사실화했고, 은행 차입금이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은행이 외면한 동양을 개인들은 고금리에 취해 불나방처럼 달려든 것이다. 동양증권이 개인들에게 판매한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 CP만 4,305억원에 달한다. 은행 정기예금이 2%대인 상황에서 연 7%가 넘는 금리에 자금이 쏠린 것이다. (주)동양 회사채 규모는 7,989억원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 8월28일 (주)동양이 찍은 회사채는 등급이 ‘BB’로 투기등급이었지만 750억원 모집에 782억원이 몰렸다. 핵심은 금리인데 10개월까지는 연 7.6%, 이후 2015년 2월까지는 연 8.3%였다. ☞3면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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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논리 무시한 보상에 너도나도 우기기”
금리는 돈의 가격이다. 탄탄한 회사나 개인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금리가 낮다. 기업이 시장에서 돈을 차입하는 회사채나 CP도 마찬가지다. 삼성 같은 대기업은 은행대출 금리보다도 싸게 발행할 수 있지만 부도 직전인 회사는 금리가 치솟는다. 금리가 높을수록 망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이런 경험은 지금까지 수없이 해왔다. 당장 2011년 이후 영업정지된 저축은행들만 봐도 예금금리는 업계 1ㆍ2위를 다투던 곳들이다.
그런데도 학습효과가 생기지 않는 이유는 뭘까.
업계에서는 경제논리 대신 정치논리가 득세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불완전판매 관련 부분은 금융감독당국이나 소송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게 맞지만 일단 우기고 보자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저축은행 피해자라며 보상을 요구하는 이들 중에서는 외제차를 타고 왔다 가는 이들도 있었고 시위를 할 때 아르바이트를 구해 대참을 시키는 사례도 있었다”며 “투자에 따른 위험도는 알고 있지만 목소리를 높이면 어떻게든 정부가 보상을 해줄 것이라는 심리가 적지 않다”고 했다.
실제 정부는 투자실패에 대한 보상에 나선 적이 많다. 외환위기라는 큰 파고 탓이기는 하지만 대우 사태 때는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개인들이 펀드를 통해 투자한 대우 회사채와 CP를 원금의 최대 95%까지 보상해줬다. 더 큰 화를 부르기 전에 막은 것이지만 투자손실에 책임을 진다는 원칙은 깨졌다.
저축은행 후순위채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1년에는 표를 의식한 국회가 예금보장한도(5,000만원)를 넘겨 예금한 저축은행 고객들의 피해를 보상하는 특별법을 추진하기도 했다. 무산되기는 했지만 목소리를 높이면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안 좋은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가장 나중에 변제를 하는 후순위채도 일부 피해보상이 됐다. 2011년 이후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21개사가 판매한 후순위채의 피해금액 7,366억원 가운데 구제금액은 1,225억원이다. 하지만 상당수 피해자들은 보상금액이 적다며 당국의 분쟁조정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채권 등에 투자를 하는 이들은 평균적으로 은행 이용고객보다 금융지식이 높다”며 “수익은 사유화하고 피해는 공유하려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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