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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31일 이른바 '공약 가계부'를 내놓으면서 법을 고쳐서라도 낭비되는 혈세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35년 만에 사립학교 직원에 대한 건강보험료 20% 국고지원을 끊기로 한 것은 상징적인 사례다.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무지출' 사업이라도 불필요하거나 다른 사업과 중복되면 구조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의무지출 사업이란 관계 법률 등에 따라 프로젝트 추진이 강제된 사업을 말한다.
이 사업을 축소ㆍ폐지해 예산을 아끼려면 해당 프로젝트의 근거 법률을 고쳐야 하는데 여야를 설득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사안인 탓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의무지출보다는 법률에 관계없이 임의로 사업 추진을 조절할 수 있는 '재량지출' 사업을 중심으로 예산절감을 하는 차선책을 선택해왔다.
하지만 재량지출 중심의 구조조정만으로는 더 이상 재정절감 효과를 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의무지출 사업에 대한 예산삭감이 소홀하자 해당 사업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향후 2년 안에 정부 재정지출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로 급증한 탓이다.
실제로 정부의 중기재정계획(2012~201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 총지출의 46.7%였던 의무지출 비중은 2015년 50.0%, 2016년 51.6%에 달할 정도로 치솟게 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부 국회의원이 지역구 유권자나 이해관계단체에 휘둘려 예산 지출을 수반하는 법률을 경쟁적으로 만들다 보니 의무지출 비중이 계속 늘고 있다"며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 중 절반 정도는 재정을 수반하는 법률안일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의무지출 사업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경제위기 등에 대응할 여력을 잃어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가 이 같은 재정 구조조정을 통해 올해부터 5년간 절감하려는 재정 규모는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11조6,000억원 ▲복지 분야(주택 포함) 12조5,000억원 ▲재정융자 분야의 이차보전 전환 5조5,000억원 ▲농림 분야 5조2,000억원 ▲산업ㆍ중소기업ㆍ에너지분야 4조3,000억원 ▲의무지출 조정 3조원 등이다.
정부는 이렇게 확보한 34조8,000억원과 국정과제 재투자를 통해 절감할 40조8,000억원을 합쳐 총 84조1,000억원의 재원을 박근혜 정부 임기 5년간 국정과제 이행용 자금으로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SOC 분야는 불요불급한 신규 사업 추진을 억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재정 절감을 이루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아울러 수익성이 있는 SOC사업은 전액 정부 재정으로 감당하기 보다는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민자사업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차관은 "도로ㆍ철도ㆍ수자원ㆍ항망ㆍ공항과 같은 SOC 사업 재정지출 규모가 지난 2007년 약 18조원이었으나 2009년 25조원에 이르렀고 이후로도 크게 줄지 않아 올해도 25조원에 이른다"며 "이는 미국 금융위기에 대응해 경기를 살리려고 늘렸던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정상 수준으로 (삭감해) 되돌려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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