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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하철 추돌사고로 많은 부상자를 낸 서울메트로의 사외이사진이 안전분야와는 전혀 무관한 인물들도 채워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외이사들은 경영진이 마련한 주요 경영 전략을 검토해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데 안전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서울메트로의 사외이사가 전원 안전 비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는 것이다.
11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메트로의 사외이사는 6명으로, 이중 안전전문가로 내세울 만한 경력을 가진 인물은 전혀 없다. 서울메트로 사외이사들의 공개된 주요경력을 살펴보면 대부분 지하철 안전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2011년 2월부터 올 2월까지 사외이사를 맡아 온 최민규 언리미티드씨엠에스 대표는 정보기술(IT) 기업인 모바일원커뮤니케이션과 라이브플렉스 사외이사, 그리고 서울시 동작구의원을 지낸 게 주요 약력의 전부로 소개돼 있다. 모바일원은 온라인 게임개발 업체로 지하철 안전과는 전혀 무관하고 구의원 경력도 안전과 연결짓기에는 근거가 빈약하다.
강해주 아이엠바이오 대표도 다미상사 기획부팀장과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한영통번역부 겸임교수가 주요 경력이어서 안전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들 2명의 사외이사는 그나마 기업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왔지만 유명 정치인 보좌관이나 시민단체 출신 등 경영과는 무관한 인사들이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린 경우도 있다.
정의당 원내대표인 심상정 의원 보좌관 출신의 오건호씨는 2012년 8월부터 사외이사를 맡아 오고 있다. 지하철과 연결할 만한 경력은 공공운수정책연구원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정도지만, 안전문제를 주요하게 다뤘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현재는 지하철과도 무관한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을 맡고 있다. 김종원 사단법인 참여와 나눔 대표는 시민단체 출신이다. 김 대표는 강서양천시민회의 공동대표와 서울민주청년단체협의회 의장,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부의장을 지냈다. 기업과의 인연은 경영컨설팅 업체로 알려진 더브릿지에이전시 이사가 유일하다. 김 대표와 같은 시기에 사외이사를 맡은 이숙현 안랩커뮤니케이션팀 부장도 안전과는 전혀 무관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안전분야 전문가는 고사하고 기업경영도 해 보지 않은 인사들이 사외이사 자격으로 매출 1조원의 서울메트로 경영에 관여해 온 셈이다.
그마나 조중래 명지대 교수가 교통공학을 전공해 지하철과 연관 고리를 찾을 수 있지만, 안전관련 논문은 알려진 게 없어 안전 전문가로 분류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사외이사들이 안전분야에 대한 전문 식견이 없다 보니 지하철 안전예산 확보는 늘 뒷전으로 밀려왔다는 분석이다. 실제 서울메트로 안전예산은 2010년 1,301억원이던 것이 2011년 644억원, 2012년 598억원, 2013년 561억원으로 해마다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는 안전관련 예산이 375억원으로 더 떨어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아무리 공기업이지만 안전문제나 경영과 무관한 인사들이 사외이사로 포진해 있다면 그것은 경영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자동차기업 CEO가 자동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맡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사외이사의 역할이 이사회 거수기 역할로 전락한 상황에서 안전전문가가 포진해 있다고 문제가 달라질 것은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내놓고 있지만, 적어도 회사 경영진의 논리에만 휘둘려 근본적인 안전문제를 소홀히 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서울시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관련 시민단체 출신들이 산하기관의 대표나 사외이사 등으로 많이 발탁된 게 사실"이라며 "경력을 철저히 검증해 자리에 걸맞는 전문가를 앉히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메트로의 상근임원은 최근 사의를 밝힌 장정우 사장과 강연기 감사, 안세련 고객서비스본부장, 구본우 기술본부장, 정수영 운영본부장 등 5명이다. 서울시 백호 교통정책관 등 서울시 공무원 2명은 당연직 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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