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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국의 리어왕은 제국을 통일하고 막강한 부를 축적한 절대 군주였다. 그런 리어에게도 근심이 있었다.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너릴, 리건, 코딜리어 세 딸을 두고 승계권을 고민한다. 그중 가장 효성이 지극한 딸에게 제국의 권좌를 물려주겠다고 결심한 리어는 각각의 영토를 돌아다니며 세 딸을 만나 진심을 파악해 본다. 큰 딸 고너릴은 아버지가 젊은 시절처럼 혈기왕성한 무사를 거느리고 왕국 곳곳에서 ‘명예회장’ 노릇을 하게끔 우대해 드리겠다고 약속한다. 둘째 딸 리건 역시도 엄청난 금은보화와 호사를 누리게 해 드리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내 딸 코딜리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리어가 가장 사랑한 딸이었던 그는 ‘아버지에게 드릴 것이라고는 오직 진심 하나 뿐’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가장 현실적인 동시에 이상적인 말이었다. 최고 지도자에게 자식이 무엇을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오직 그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서약만이 진심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아버지에게 대답했던 코딜리어는 오히려 미움을 사게 되었다. 아버지는 첫째와 둘째 딸을 두고 고심하다가 결국 장녀 고너릴에게 몸을 의탁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고너릴은 ‘늙은이에게 무사들이 무슨 필요냐’라며 경호 병력을 쫓아냈다. 처음 협상과 다른 조건에 놓인 아버지는 분노 끝에 리건을 찾아 가지만 둘째와 첫째는 작당모의를 한 상태였다. 결국 들판으로 쫓겨 난 창업자는 영국 전토를 떠돌아다니다가 프랑스로 시집 간 막내딸을 떠올린다. 급기야는 외국 군대를 동원해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려다 실패하고 만다. 리어의 최후는 막내딸과 함께 감옥에 갇혀 병들어가는 것이었다.
450년 전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리어왕’이 그리 먼 이야기 같지 않다. 얼마 전 롯데 집안에서 일어난 ‘왕자의 난’ 때문이다. 아직은 내막이 어떤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강건한 창업자였던 아버지가 두 아들의 분쟁에 휘말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건강한 시절의 아버지는 아들들을 혹독하게 교육시켰다. 장남은 상사에서, 차남은 증권사에서 경력을 시작해 각각 깊이 경영학 이론과 실무를 공부하고 통찰을 키웠다. 그렇게 성장한 아들들은 아버지의 제국을 똑같이 나누어 갖고 훌륭한 기업으로 일궈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한낱 꿈이 되고 말았다. 두 아들은 끝내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서바이벌 게임에 휘말려 버렸다. 게다가 이복 누나까지 얽혀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어쩌면 아버지로서는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비극적 사태를 94세의 황혼에 맞닥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감한 마음마저 든다.
리어 왕의 이야기는 롯데 ‘왕자의 난’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승계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과 철학을 분명히 하지 않은채 뒷짐 지고 물러나 있는 창업자의 새드엔딩 스토리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현재 정황으로 보면 롯데판 ‘왕자의 난’은 아직 아버지에게 기회의 여지가 열려있는 듯도 하다. 만약 그렇다면 오랫동안 우리 산업계를 이끌어 왔던 신격호 총괄회장이 현명하고도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지 못했던 리어 왕의 그릇된 선택을 아쉬워하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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